소년은 생일날 어머니한테 받은 10실링으로 친구들에게 한턱을 내기로 했다. 그는 가장 친한 친구 셋과 함께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크림과 초콜릿과자를 주문해 먹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고 있으니 왕자라도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루한 옷차림의 …
‘나는 죽으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 참기 힘들다.’ 조선 후기 문인 심노숭(沈魯崇)이 쓴 짧은 글 ‘무덤 옆에 나무를 심으며’(新山種樹記)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가 31세에 죽은 동갑내기 아내를 그리며 무덤가에 나무들을 계속 심자, 죽으면 아무것도 모른다며 사람들이 만류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간통한 여자를 학교 운동장으로 끌고 갔다.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학교가 문을 닫고 있던 시절이어서 운동장은 공개재판에 알맞은 곳이었다. 여자를 끌고 간 사람들은 스무 명 남짓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여자는 벌레이자 독사이며 악마였다. 그들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랐…
사전은 평화를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함’이라고 정의한다. 그 평화를 사유의 핵심에 놓은 철학자가 묵자였다. 그는 비공(非攻)을 주장했다. 비공이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문제는 약육강식의 시대에 그것을 어떻게 관철시키느냐 하는 것이었다. 약자와 약…
100년도 더 전에 쓰인 한글 편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글씨들이 편지를 쓴 사람의 불안정한 심리를 말해준다. ‘어머님께 올리나이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처음에는 큰 글씨이더니, 그걸로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점점 작은 글씨로 변한다. 위쪽 여백은 아예 더 작…
며칠 후면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게 될 사형수를 위해 몇 마디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정신의학자가 있었다. 교도소장의 의뢰로 죄수들에게 강연을 하고 난 직후였다. 그는 기꺼이 요청에 응했다. 그는 자신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스실의 그림자 속에 살았다며 그때의 경험을 사형수에게 얘기…
그는 1994년, 머릿속에 떠다니는 악상을 노래로 완성한 후 울었다. 영국의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가수 톰 요크가 그랬다. ‘가짜 플라스틱 나무들’이 그 노래였다. 유난히 쓸쓸한 노래를 톰 요크의 몽환적인 고음으로 듣는 순간, 우리는 저절로 그 쓸쓸함 속으로 빠져든다. 노래는 이렇게…
예술가들은 종종 다른 예술가들의 것을 빌려 창조적으로 전유한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원작자인 다나베 세이코도 그렇다. 그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을 빌려 장애와 관련한 속 깊은 사유를 펼쳐 보인다.…
“어미와 떨어지거든 하늘이 찢어지도록 울어라. 울어서 네가 살아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네가 산다. 그 울음을 주께서 들을 것이고 사람의 귀가 들을 것이고 종국에는 인정이 움직일 것이다.” 김소윤의 소설 ‘난주’에 나오는 말이다. 아이를 떼어놓는 어미는 정약현(다산 정약용의 형…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에도 여전히 읽히고, 미국에서는 국민시인이라 불리는 휘트먼이나 프로스트의 시집보다 더 많이 팔리는 시집.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마스나비’다. 세계의 독자들이 루미의 시에 환호하는 이유는 거기에 담긴 지혜와 사랑과 위로 때문이다. 마스나비 3권에 나오는 …
한 척의 핑크색 배가 떠 있다. 아니, 떠 있다기보다는 번잡한 교차로 한복판에 높이 들려져 있다. 배의 옆구리에 쓰인 ‘진실을 말하라’라는 굵은 검정 글씨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사람들이 에워싸 그 배를 보호하고 있다. 이따금 누군가가 배 위로 올라가 무슨 말인가를 한다. 유명배우 …
예술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규범이나 제도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해체하여 그 허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에 상영 중인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는 후자의 경우다.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의미를 해체하여 재구성한다. 가족이라는 틀은 결코 무너지지 않…
우리는 이따금 예기치 않은 곳에서 역사의 상처와 마주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해군 장교였던 피에르 로티의 자전소설 ‘자두부인’은 좋은 예이다. 이 소설의 영어판 제목은 ‘일본과 한국―자두부인’이지만 제목이 암시하는 것과 달리, 240쪽 중 한국에 관한 부분은 20쪽에…
지난 몇천 년 동안 인류의 스승이기를 멈춘 적이 없는 부처. 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자비를 실천했다. 그의 죽음은 보석공 쿤다가 준 음식 때문이었다. 부처는 음식을 먹더니 쿤다에게 세상 천지에 그걸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며 나머지 음식은 땅에 묻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난 몇 년 동안 세계인의 귀를 붙들고 좀처럼 놓아줄 기미가 없는 방탄소년단. 그들이 발표한 새 앨범에 수록된 ‘소우주’에는 별에 관한 비유가 나온다. 인간을 별에 비유하는 것은 우리에게 친숙한 수사법이다. 인간을 소우주로 표현하는 것도 친숙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니 특별할 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