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그 슬픔에 붙들린다. 공감 능력을 갖고 태어난 탓이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타인의 슬픔’은 그 공감을 주제로 한 따뜻한 시다. “타인의 고통을 보며/나도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타인의 슬픔을 보며/내 어찌 따뜻하…
푸른 눈을 갖고 싶은 소녀가 있다. 소녀는 영화에 나오는 백인 여자들의 눈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백인 인형의 눈을 닮고 싶다. 그렇게 되면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을 것 같고 폭력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비현실적이지만 허황한 생각만은 아니다. 푸른 눈을 가진 백인이었다면 제대로 …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충격과 상처를 극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희곡 ‘아버지와 살면’은 그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다. 딸과 아버지가 이야기에 등장하는데 딸은 23세, 아버지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때 죽었다. 그런데 3년 전에 죽은 아버지가…
동화는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만을 담을 것 같지만 교묘하게 폭력을 숨겨놓기도 한다. 그림 형제나 안데르센의 동화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무꾼과 선녀’ 같은 한국 전래동화도 그렇다. 나무꾼과 선녀는 이런 이야기다. 가난한 나무꾼이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을 나무 더미 뒤에 숨겨줘 목숨을 …
아들은 자신을 온전한 인격체로 사랑하는 아버지가 발가락 통풍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마음에 새겼다. 화장실에 갈 때는 한쪽 발을 들고 기어가야 했고 얇은 시트에 눌리는 것마저도 고통스러워 밖으로 발을 내놓고 자야 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고통이 아들에게는 상처였다. 그는 아직도 빨…
고대 수메르 문명 전문가인 미국 학자 새뮤얼 크레이머가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고대 오리엔트 도서관에서 두 개의 점토판을 발견하고 사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가져가 펜실베이니아대 박물관에 있는 네 개의 점토판과 비교해 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것들은 서로의 일…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데/내 기린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영랑 김윤식의 암울하고 처연한 시 ‘거문고’는 이렇게 시작된다. 기린은 거문고의 고고한 음색과 자태를 가리키는 은유다. 그 기린이 20년 전에 울고 더 이상 울지를 못하고 있다니 무슨 일일까. 이 시가…
유년 시절의 경험과 추억이 삶의 소중한 씨앗이 되기도 한다. 톨스토이문학상 수상자이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계 러시아 작가 아나톨리 김의 경우에도 그랬다. 강릉 김씨의 후손인 그는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소수민족들이 내몰려 살…
조금 과장하자면 동화는 아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것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그렇다. 자신의 별을 떠나 지구에 왔다가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가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의 핵심에 있는 왕자와 여우의 일화는 특히 그렇다. 어린 왕자…
2015년 1월 서울에서 예술품 경매가 있었다. 경매에 나온 품목 중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두 점의 그림이 있었다. 동학 1대 교주인 수운(水雲) 최제우, 2대 교주인 해월(海月) 최시형의 최후를 그린 그림들이었다. 수운은 1864년 대구에서, 해월은 1898년 서울에서 처형을 당했…
예술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지만 때로는 아름다움 속에 편견을 숨겨 놓기도 한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이 그렇다. 물론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미국 해군 장교 핑커턴과 그에게서 버림받는 일본 기녀 사이에서 빚어지는 비극적 이야기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었…
음악회가 압도적인 환호 속에 끝났다. 앙코르곡만 남은 상황에서 그가 청중을 향해 말했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한국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지만, 저는 여기에서 여러분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이 옳은지 어떤지 모르겠지…
사람들은 이따금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다. 움(새싹)이 터서 자라는 봄, 푸름이 최고조에 달하는 여름, 열매를 맺는 가을, 만물이 얼어붙는 겨울이 삶의 여정을 닮아서다. 그 여정을 갈무리하지 못하는 슬픈 사람들이 있다. 조선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러시아 가수 빅토…
어느 프랑스 해변에 갑자기 파도가 크게 일었다. 잔잔하던 바다가 순식간에 위험한 곳으로 돌변했다. 두 아이가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거친 파도에 휩쓸렸다. 결국 아이들은 살고 그는 죽었다. 프랑스 철학자 안 뒤푸르망텔은 쉰셋의 나이로 그렇…
달이 나오는 노래가 우리를 위로하던 시절이 있었다. 1924년에 발표된 최초의 한국 동요 ‘반달’만 해도 그랬다.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가 있는 달은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망망대해를 가는 쪽배였다. “시집간 맏누이 부고를 접하고 처연한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