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가 무슨 말을 하다 자동차 얘기를 불쑥 꺼낸다. 그에게는 아주 낡은 차가 있다고 한다. 엔진은 괜찮지만 차대가 너무 낡아 자동차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더 이상 운행할 수가 없게 된 차다. 상식적으로는 폐차장으로 보내는 게 최선일 듯하다. 그러나 그 차가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
딸이 “양공주”라는 말을 입에 올리자 어머니는 “그건 나쁜 말”이라고 한다. 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 식으로 쓰여 온 건 알지만, 내가 글쓰기를 통해 그 의미를 바꾸려고 해요.” 고통스러운 대화다. 어머니는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에 “양공주”였고 딸은 그러한 삶에서 태어난 …
계모는 일반적으로 사악하고 불길한 존재로 묘사된다. ‘계모’라는 우리말도 어쩐지 꺼림직하게 느껴진다. 영어에서 계모의 축복(stepmother’s blessing)이라는 말은 손톱 주변의 살이 일어난 부분으로, 잘못 건드렸다가는 생손앓이를 하게 되는 손거스러미를 가리킨다. 계모에 대한…
철학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리스에 소크라테스는 있었어도 그에 상응하는 여성 철학자는 없었다. 조선에 퇴계는 있었어도 그에 상응하는 여성 철학자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임윤지당이라는 18세기 조선 여성은 무척 예외적인 존재다. 그는 남성이 중심인 시대에 ‘내가 비록 부녀자…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축구에 열광한 사람이었다. 그는 축구를 예술에 비유해 “대중의 발레”라고 했다. 그리고 그 발레를 평생 사랑했다. 축구 발레곡을 쓰기도 했고 신문에 글을 쓰기도 했다. 심판 자격도 있었고 선수들을 집에 초대해 식사하고 노래를…
독창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시대지만, 예술은 본질적으로 다른 예술가들의 것을 빌리는 행위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말대로 모든 작품은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인용의 모자이크”인지 모른다. 김소진 작가의 ‘자전거 도둑’은 이탈리아 영화감독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차용했다는 사실…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고통이 있다.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 ‘소피의 선택’을 쓴 윌리엄 스타이런은 ‘보이는 어둠’에서 우울증으로 인한 고통의 경험적 속성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1988년 어느 날, 그는 ‘뉴욕타임스’에서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에 관한 심포지엄 기사를 읽다가 몹…
빈센트 반 고흐는 말년까지도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는 연주자가 “베토벤을 연주하면서 자기만의 해석을 덧붙이듯” 화가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세상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았다. 그가 1890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
많은 사람들에게 거미는 하찮은 존재다. 아무렇게나 쓸어내거나 짓밟아도 되는 존재. 그러나 시인 백석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 그의 시 ‘수라(修羅)’는 거미가 인간과 다름없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노래한다. 컴컴한 밤이다. 시인은 작은 거미가 방바닥으로 내려오자 무심코 문밖으로 …
‘삼국유사’를 지은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은 대부분의 삶을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어도 효자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삼국유사’의 마지막에 부모와 자식 이야기를 배치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그 이야기는 그의 손을 거치며 감동이 더해졌다. 지은(知恩)이라는 이름의 딸이 나온다…
하마를 닮은 귀여운 동물 무민트롤. 그는 비가 오자 집 안에서 친구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그는 숨을 곳이 마땅치 않자 구석에 놓인 까만 모자 속으로 들어간다. 꼬리를 안으로 잡아당기고 몸을 움츠리니 숨기에 완벽하다. 친구들은 그를 찾지 못해 난리다. 얼마 후 그는 그들을 생각해서…
달라이 라마가 1973년 유럽을 처음 방문했을 때 어떤 젊은이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티베트에 대해 세상에 알려야 하는 사람이 자비와 선한 마음에 관한 얘기를 더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졌다. “전 당신이 티베트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더없이 좋…
바닷가에 살던 아이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해변에 나가 갈매기들과 놀았다. 수백 마리의 갈매기가 그를 따라다니며 노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그 얘기를 듣고 갈매기 한 마리를 데려와 보라고 했다. 정말로 그런지 확인하고 싶었던 거다. 아이는 다음 날 아침 해변으…
프란체스코 로시 감독의 ‘휴전’(1996년)은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회고록 ‘휴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수용소에서 풀려났어도 고국인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8개월 동안이나 러시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를 떠돌던 유대인들의 고단한 여정이 펼쳐진다. 그들에게는…
수만 마리의 불가사리가 폭풍우에 떠밀려 해변으로 올라와 있다. 물 없이는 살 수 없는 불가사리들이니 이제 영락없이 모래사장에서 죽게 생겼다. 그런데 해변을 산책하던 어린 소녀가 불가사리 하나를 집어 바다에 던진다. 어떤 노인이 그 모습을 보고 말한다. “얘야, 이 해변엔 수십만은 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