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의 나라 덴마크는 전쟁과 인연이 먼 나라 같지만, 오랫동안 군사적 강국이었다. 현대 전쟁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2명의 덴마크 장교가 있다. 육사 수석졸업생이었던 헬무트 폰 몰트케는 독일군에 입대해서 참모본부를 창설하고, 근대 군사조직과 전술의 아버지가 되었다. 마스 요한 부크 리…
손자는 싸우지 않고 아군과 적의 군대를 보존하면서 승리하는 것이 최고의 승리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실천 방법이 쉽지 않다. 중국 고대의 병서 ‘육도’는 주나라 문왕과 태공망이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 무력을 쓰지 않고 모략으로 적을 정복하는 방법…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다. 가이드가 중국은 대만 침공 준비가 다 돼 있다고 말했다. 바닷가에 군대가 대기 중이며 “주석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이라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 뒤로 30년이 지났다. 요즘 자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겠냐는 질문을 받는다. 생각해보니 30년간 그런 질문을 받…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이 맹활약을 하고 있다. 아직은 20세기 전쟁에 드론이라는 신통한 무기가 첨가된 형태이지만 10년 후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전쟁의 양상 자체를 바꿔 버릴 것이 분명하다. 드론도 자체 진화를 하겠지만 이번에 보여준 드론의 활약상은 로봇 병기의 개발에 박차를 가할…
자아도취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아부이다. 그런데 아부가 나쁜 것일까? 아부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을 흡족하고 기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 행복의 한 부분이고, 행복의 요체이다. 아부는 인간의 삶 전체를 달콤하게 하는 양념이다. 누구는 거짓에 속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
몽골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 제일 가치 있는 노획물은 사람이었다. 젊고 건강한 남녀를 잡아가 노예로 팔았다. 강화가 성립되고 전쟁이 끝나도 잡혀간 사람들을 되찾아 오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팔려 간 사람을 찾아오려면 주인에게 값을 지불해야 했다. 고려말 왜구들이 납치해간 사람들이 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사자의 심장과 여우의 두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군주는 군주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대표자로서의 군주이다. 따라서 이 명제는 국가의 행동지침으로 치환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마키아벨리의 시대가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높아…
1522년 4월 27일, 이탈리아 밀라노 북부 비코카라는 평원에서 프랑스군과 합스부르크, 로마 교황령, 스페인 연합군이 맞붙었다. 이날 프랑스군에는 필승을 약속하는 무적의 병기가 있었다. 16세기 유럽 전쟁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용병대였다. 그중에서 스위스 용병대는 가장 비싸고 …
유럽의 기독교 문명권에서 부활절은 가장 중요한 절기이다. 작년 교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사자들에게 부활절 휴전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종교도 전쟁을 이기지는 못하나 보다. 1916년 4월 24일 1000여 명의 아일랜드 무장 독립투쟁군이 봉기해서 더블린 시내의 주요 거점들…
미국 보스턴의 찰스타운 지역에는 오벨리스크를 본뜬 67m 높이의 길쭉한 탑이 서 있다. 미국 독립전쟁 최초의 전투였던 벙커힐 전투를 기념하는 탑이다. 1775년 6월 17일 이곳에서 영국 정규군 3000여 명과 당시엔 ‘대륙군’이라 불렀지만 민병대나 다름없었던 미군 2400명이 전투를…
전쟁의 역사에서 오래된 고민이 있다.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자유로운 민주 국가, 그리고 지도자의 의지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독재 국가. 두 나라가 전쟁을 하면 어느 나라가 유리할까? 자유와 진보를 추종하는 지식인들에게도 두려운 질문이다. 전쟁은 그 시작부터가 자유, 합리, 상식…
1919년 9월 12일, 독일 뮌헨의 한 맥주 홀에서 독일노동자당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당명은 거창하지만 소그룹에 불과한 집단이었다. 그래도 감시와 동태 파악을 위해 군에서 파견한 스파이가 참석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아돌프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단순한 스파이가 아니었다. 군…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강연이나 방송을 하고 나면 이런 말로 의문을 표시하는 분이 곧잘 있다. 일리는 있는 말이다. 고려사는 조선왕조에서 국가사업으로 편찬한 역사이다. 당연히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생략과 왜…
로마인들의 그리스 사랑은 대단했다. 귀족 부호 집안은 그리스인을 가정교사로 두어야 했다. 로마에서 성공하려면 법률가가 되는 것이 최고였는데, 대중을 사로잡는 언변과 논리를 구사하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려면 그리스 유학이 필수였다. 카이사르도 그리스 유학을 거쳐 법률가가 되어 정계로 입문…
나폴레옹은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고 쉴 새 없이 새로운 할 일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폴레옹이 죽기 전까지 두고두고 미련을 보인 전투가 워털루 전투이다. 그는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그 전투를 지휘할 수 있다면’이라는 말을 여러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