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 ‘별’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시조를 남긴 가람 이병기. 그는 시조 혁신의 방향을 제시한 기념비적 논문인 ‘시조는 혁신하자’를 썼고 서지학, 국문학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국어국문학 및 국사에 관한 방대한 문헌을 수집해서 서울대에 ‘가람문고’가 설치됐다. 묻혀 있던 고전 작품…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는 20세 때 김동신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순창의 일본인 관청을 습격한 항일투사이다. “일정의 박해를 받아 비참한 질곡에 신음하는 동포를 위하여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하려”고 변호사가 되었고 수많은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로 변론했다. 주도하던 신간회가 해체되…
대한민국의 대표 시인이자 문학의 거목인 미당 서정주는 한민족의 문화와 정서를 독특한 언어를 통해 풀어냈다. 그는 탁월한 언어 감각, 15권의 시집이라는 다작, 고르게 뛰어난 작품의 완성도, 전통 소재의 활용 등으로 현대시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국화 옆에서’ ‘자화상’ ‘귀촉도’…
‘빈자의 성녀’로 추앙받는 테레사 수녀는 인도 콜카타의 빈민가에 살면서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설립해 빈민, 고아, 노인, 나병환자 등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마더 테레사’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1979년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 샌들을 신고 나와서 “이 돈으로 빵을 몇 개나 살 수 …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 정상급 작곡가 윤이상. 그는 유럽의 평론가들에 의해 ‘20세기 중요 작곡가 56인’,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1995년에는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이 선정한 ‘20세기 100년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김준엽 고려대 총장만큼 존경받는 인물도 드물다. 선생은 제국주의와 군부독재라는 두 시련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일제의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6000리를 걸어서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갔고 광복군으로 활약했다. 선생과 함께한 이는 평…
이완용을 두고 당대의 명필이었지만 친일 행적 때문에 글씨가 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완용은 중국의 미불(米(불,비,패)), 동기창(董其昌) 같은 여러 명인의 서법을 깊이 연구할 정도로 서예에 심취했다고 한다. 독립문 현판이나 직지사 대웅전 글씨도 그가 썼다는 주장이 있…
정약용의 글씨는 보기에도 멋지지만 필적학으로 접근해도 흠잡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하다. 글씨가 사람의 내면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한다면 선생은 군자나 대인과 같은 이상적인 인간의 수준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형태가 네모반듯하지만 마무리가 길게 뻗치다가 왼쪽으로 향한다. 네모반듯한…
청록산수, 바보산수로 유명한 운보 김기창은 20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미술가이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병으로 청각을 상실했고 언어장애를 얻었지만 많은 노력 끝에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글씨는 부드러운 곡선 위주인데 이는 예술적 감성을 의미한다. 크…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법에 따르지 않고 나름대로 독창적인 글씨체를 구사했다. 그가 즐겨 쓴 ‘大道無門(대도무문)’은 그의 필체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가장 큰 특징은 여백이 거의 없고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이런 글씨를 쓰는 사람은 열정, 성취욕, 모험심, 적극성, 자존심, 진취성, 근…
대한민국 미술시장에서 최고 작품가의 주인공이었던 박수근은 그 자리를 김환기에게 내 주었지만 아직도 작품의 호당 가격은 단연 최고이다. 박수근의 작품이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국민화가’,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불리는 것과 직접 관련이 있다. 그는 노상과 장터, 사람들의 소박한…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 등 3명의 특사를 파견한다.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주권 회복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특사로 파견된 이준은 우리나라 최초의 검사이다. 고종은 선생의 법률 지식과 정의감을…
신화가 된 여자, 여자 흑인 사업가 최초 세계 500대 부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모두 오프라 윈프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프라 윈프리 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그녀는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부와…
일제강점기에 애국지사 변호를 가장 많이 한 변호사가 가인(街人) 김병로, 긍인(兢人) 허헌, 애산 이인(李仁)이었다. 이들의 이름이나 호에 모두 ‘인’자가 들어가서 이들을 민족변호사 삼인이라고 부른다. 그중 한 명인 이인 선생은 변호사 개업 후 첫 사건으로 의열단사건을 맡게 된 것을 …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미술가 백남준은 현대예술과 비디오를 접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글씨는 ‘N’ ‘w’ 등에서 보듯이 모서리의 각이 두드러져서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했음을 알 수 있다. 경기중, 경기고를 나왔고 일본 도쿄대, 독일 뮌헨대, 프라이부르크음악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