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교사가 되었을 때 개학 전에 제일 먼저 받은 것은 교실 열쇠였다. 프랑스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자신의 수업 시간마다 직접 교실 문을 열고 잠가야 한다. 어느 날, 깜박 잊고 열쇠를 안 가져오는 바람에 동료 교사에게 열쇠를 빌리러 왔다 갔다 하느라 무척 번거로웠다. 미안하…
파리 중심부에 있는 빅토르 위고 고등학교에서 가르칠 때의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몇몇 학생이 정문 바로 앞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아닌가. 평범해 보이는 학생들이었는데 어찌나 자연스럽고 당당하던지. 그 모습에 놀란 내가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프랑스에서는 길…
프랑스 중3 학생들은 이맘때쯤이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등하교’가 아니라 ‘출퇴근’을 한다. 학교 수업 대신 회사나 관공서에서 직업 연수(stage professionnel)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 세계와 노동 현장을 직접 체험하게 해 청소년들의 진로 결정에 …
프랑스 학생들은 시 외우는 것에 익숙하다. 유치원부터 ‘콩틴(comptine)’이라는 운을 맞춘 짧은 시를 외우는 훈련이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콩틴 외우기는 초등학교 때 중요한 숙제 중 하나다. 공책에 시를 붙이고 옆면에는 그 시에 대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몸짓과 함께 그 시를 …
최근 숙명여고 교사의 시험지 유출 사건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자녀의 ‘A+ 학점’ 평가에 대한 뉴스를 접했다. 불현듯 아들이 프랑스에서 의과대학 1학년을 다닐 때 일이 생각났다. 당시 그 대학에는 유명한 생리학과 교수가 있었는데, 자신의 조카가 의과대학에 입학하자 1학년 수업을 아예 …
“수험생 여러분, 행운을 빕니다.”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논술형 대입자격시험) 철인 6월에도 이 문구를 보기가 힘들다. 그런데 일 년에 두 번, 1월과 5월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대규모 전시장 파르크 덱스포지시옹(Parc d’Exposition)의 전광판에 이 문구가 뜬다. 파리…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016년, 플로베르중학교의 제자들로부터였다. 이제 겨우 떠듬떠듬 한글을 읽기 시작한 아이들이었는데, 그 이름만큼은 이미 잘 썼다. 그런데 사실 그 아이들은 K팝만큼이나 아리랑도 좋아해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했다. 한국어 수업이 생기기 …
2015년 9월 18일, 파리의 귀스타브 플로베르 중학교에서 “한글은 누가 만들었어요?”라고 프랑스말로 묻자, “세종대왕!”이라고 17명의 프랑스 중2 학생들이 한국말로 대답했다.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개막식 날, 한국 국무총리와 프랑스 교육부 장관 등 양국의 외교·교육계 인사들…
아이가 고3 때, 수학 시험이 있다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더니, 아침에 한숨을 쉰다. 첫 시간이 체육 시간이라 오래달리기를 하는데, 그러고 나서 수학 시험을 보면 힘들다는 것이다. “바칼로레아를 코앞에 둔 고3이 시험 날 아침에 달리기를 해야 하다니….” 아이는 툴툴 대면서 학교에 갔…
중1 아들을 학원에 보내는 문제로 고민하던 후배가 프랑스 학생들도 학원에 다니냐고 물었다. 프랑스에도 학원이 있기는 하지만, 개념과 목적이 크게 달라서 간단하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우리 초중고교생이 다니는 ‘학원’을 프랑스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 대신 집에서 보충 수업을 받을…
프랑스 파리의 귀스타브 플로베르 중학교에서 가르칠 때의 일이다. 중1 학생들의 한국어 수업 첫날,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몇 위일 것 같으냐고 질문했다. 엔조가 손을 번쩍 들더니 “1위”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뎀이 “아니야. …
“새로 지은 베르사유궁전에 왕의 시종장으로 입궁한 귀족이 되어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라. 단, 베르사유궁의 특징과 그곳에서 지내는 귀족들의 생활상과 풍습에 대한 묘사가 포함돼야 한다.”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프랑스 루이 14세의 절대왕권에 대해 배우고 나서 본 역사 …
프랑스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바칼로레아를 한 달쯤 앞둔 날, 내 아들 수학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바보 같은 질문이겠지만…”이라며 머뭇거리는 발레리에게 선생님이 “이 세상에 바보 같은 질문이란 없다”고 하자, 발레리는 말을 이었다. “이건 도대체 왜 배워야 해요?” 선생님은 좋은 질문이…
요즘 한국에서는 대학입학 전형에 지원하기 위한 학교생활기록부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학교생활기록부는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데 무척 중요한 자료다. 그러나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프랑스 학교의 생활기록부는 성적표에 포함되어 있다. 성적표에…
“실내 하키요!” “요리하고 싶어요!” “저는 멀티스포츠요!” 수요일 오후. 프랑스 학교의 수업은 오전에 끝난다. 그런데 ‘여가활동센터(Centre de Loisir)’에 등록한 학생들은 점심 급식을 마친 후 교내 체육관에 모인다. 교사는 퇴근했지만 ‘사회문화 지도사’ 선생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