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가 흥행하자 아이들이 물고기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는 사건이 여럿 발생했다. 영화를 본 아이들이 물고기에게 자유를 주려다가 벌어진 일이다. 영화에서 아기 물고기 니모가 사람에게 납치되자 말린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말린은 바다거북 크…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는 달빛에 일렁인다. 아름답지만 싸늘한 공포감을 주는 일렁거림이다. 어선은 파도와 한 몸이 돼 천천히 오르내린다. 7명의 선원은 선실에서 자고 있다. 열다섯 살의 막내 선원만이 눈을 부릅뜬 채 바다를 주시하고 있다. 밤하늘이 이불처럼 아늑하고, 파도 소리가 자장가처…
아주 쉬운 문제다. 피서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해수욕장은? 당연히 해운대다. 그렇다면 해운대는 동해인가, 남해인가? 이 물음에 정확한 답을 내놓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심지어 해양민속 전문가, 광안리 바닷가에 사는 동생, 부산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지인에게 물어도 마찬가지.…
해병대 검문소를 통과하여 달리는 도로는 한적했다. 봄과 여름에 한 번씩 갔으나 화려했던 포구를 기억하는 노인을 만나지 못했다. 세 번째 방문이다. 철책선을 뚫고 들이치는 겨울바람은 사람의 온기로 덥힐 수 없어 더욱 매서웠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북한의 풍경도 황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무성한 수풀을 헤쳐 나가며 며칠째 산등성이를 올랐다. 갯벌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산 중턱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조릿대가 무성한 곳에 닿는다. 신석기인이 먹고 버린 굴 껍데기 더미를 살피기를 여러 날. 드디어 빗살무늬토기 몇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틈틈이 패총을 찾은 결실이다. 이…
섬의 분교를 다녔다. 운동장에서 축구할 때면 네댓 번은 바닷물에 들어가야 했다. 축구공은 나지막한 담장을 넘어 바다로 굴러가기 일쑤였다. 멸치가 잡히는 철, 아이들의 놀이터인 바닷가 공터는 멸치 말리는 장소로 변했다. 해변을 따라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은 비릿한 멸치 냄새가 따라다녔다…
태풍이 휩쓸고 간 바닷가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생활 쓰레기가 밀려와 언덕이 된 바닷가에서 뭔가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목적 없는 보물찾기였다. 재밌는 물건이 숨어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온종일 쓰레기와 놀았다. 소년 시절의 태풍에 대한 내 기억은 그렇게 거대한 쓰레기더미로 …
주민들이 망둥이를 낚을 때 그는 갯벌을 걸어 다닌다. 바닷물이 빠지는 3시간 동안 맨손으로 500마리 넘게 건져 올린다. 팔을 뻗으면 열이면 열 다 잡힌다. 작은 인기척에도 눈이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숨는 망둥이가 자석에 쇳조각 붙듯 한다. 박하지라 부르는 돌게도 보이는 족족 …
필자는 횟집이나 어시장에 가면 물고기에 대해 아는 척하는 고질병이 있다. 어느 날, 지인들과 서울 신촌의 한 횟집에 갔다. “수족관에 있는 개숭어가 참 싱싱하네요”라며 한껏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참숭언데요”라는 주인장의 예상치 못한 한마디에 일행은 한바탕 웃으며 술자리가 끝날 때…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신성성이 살아 있는 숲이 있다. 제방이 가로막기 전, 숲과 해안은 맞닿아 있었다. 봄의 기운을 받아 나뭇잎이 무성해지면 해안가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깊은 그늘은 물고기를 해안가로 불러 모았고,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다. 하늘로 치솟은 숲은 바람과 파도로부터 마…
촌스럽고 오래된 간판이 걸린 2층 계단을 오르자 역한 냄새가 짙어졌다. 문을 여는 순간 접착제와 고무 냄새가 밀려왔다. 바닥과 테이블에는 검정 고무원단이 널려 있고, 그 속에서 노인 3명이 원단을 자르고 붙이고 있었다. 잠수복을 만드는 가내수공업 현장이다. 해왕잠수복사와 울산잠수복…
특별할 것 없지만 특별한 마을. 언제부턴가 동해 바닷가의 풍경이 된 카페나 음식점 하나 없는 마을이 있다. 심심할 정도로 한적하지만 투명한 물에 파랑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린 듯, 쪽빛 바다에 수많은 갯바위가 들쑥날쑥하다. 갈매기가 온 섬을 하얗게 뒤덮은 작은 섬이 동화처럼 눈앞에 펼…
인연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 했던가. 아지랑이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화창한 봄날에 경남 남해군 해오름예술촌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독특한 차림의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흰 수염이 온 얼굴을 덮었고, 두건을 두르고 한복을 입은 모습이 도인을 연상시켰다. 노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시원한 해풍과 방해받지 않고 쏟아지는 햇살. 바닷가는 낭만적이다. 온갖 생명의 안식처인 바다는 푸근하다. 하지만 여기도 삶은 치열하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던 동해안의 한적한 어촌. 40여 명이 모인 마을회관엔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선박 주인과 해녀 사이의 4번째 회의가 시작됐다. 해…
지난해 10개월간 머물렀던 경기 연평도에서는 아찔한 기억이 있다. 썰물 때 잠깐 바다에 길이 생긴 틈을 타 인근 모이도에 들어갔다. 이곳은 ‘매∼’ 소리로 포효하며 섬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야생화된 염소 3마리만 있는 무인도.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섬 정상을 가로질러 보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