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에 동명이인이 있으면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물고기 이름의 세계는 심각해서 손쓸 방법이 없을 정도다. 객주리, 밴댕이, 다금바리, 숭어, 용가자미 등 수많은 물고기가 같은 이름을 쓰고 있다. 내가 가리키는 물고기와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어종이 다를 때가 있다. 때로는 서로 다른 …
좋아하는 음식 열을 꼽으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해산물이다. 그중에서도 독도새우라 불리는 도화새우, 닭새우(가시배새우), 꽃새우(물렁가시붉은새우)와 대게, 킹크랩 등 갑각류가 주를 이룬다. 독도새우 3종 중에서도 가장 비싼 도화새우는 현재 시세로 kg당 30만 원을 넘고, 닭새우와 꽃새우…
캐럭, 캐러벨, 갤리언 등 대양을 가로지르며 신항로를 찾던 배들로 가득했다. 아메리카 항로를 개척한 콜럼버스가 1492년 첫 항해에서 타고 간 산타마리아호, 인도 항로를 찾아낸 바스쿠 다 가마가 1497년 탔던 상 가브리엘호, 세계 일주를 한 마젤란 함대의 함선인 빅토리아호까지 다양한…
64명이 탄 배가 표류하다가 26명이 익사하고, 2명이 병사해 36명이 생존했다. 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선 ‘스페르베르’호가 제주도 서귀포에 닿았을 때 상황이다. 생존한 헨드릭 하멜과 일행은 난파선을 탈출해 막막함과 두려움 속에 낯선 땅을 밟았을 터. 바닷길로 수만 km 떨…
물살은 죽고 살기를 반복한다. 살아나는 물이 있고, 죽는 물이 있다. 밀물과 썰물의 고저 편차가 오늘보다 내일이 크면 사는 물이고, 작으면 죽는 물이다. 물때식을 보면 7∼9물 사이에서 조차가 최대치이므로 물의 흐름이 빠르고, 1∼2물은 조차가 작고 물살이 느리다. 옛사람들은 조수 현…
‘섬을 섬이게 하는 바다와/바다를 바다이게 하는 섬은/서로를 서로이게 하는/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고/천년을 천년이라 생각지도 않고.’(고찬규의 ‘섬’) 바다에 둘러싸여 고립되고 육지로부터 단절된 땅. 그래서 어느 시인은 외롭지 않으면 섬이 아니라고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연평도에서 …
생선은 때깔이 중요하다. 지난달 물고기를 주제로 강연할 때 은갈치와 먹갈치 중에서 어떤 게 더 맛있는가를 묻는 청중이 있었다. 질문자는 은갈치와 먹갈치를 다른 종으로 알고 있었다. 어업 방식의 차이로 색깔이 다를 뿐 종이 다르지는 않다. 은갈치는 낚싯바늘을 이용하는 채낚기나 주낙 등으…
한국에서 전해졌으나 일본인이 더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지난달 일본 오사카로 가족 여행을 갔었다. 저녁에 호텔 인근 편의점에 들렀더니 한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맥주 안주를 고르기 위해 냉장식품 코너를 서성이다가 한국 젊은이들 대화를 듣게 됐다. “명란을 일본에서는 명태 자식이라고…
모 언론사 단장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부재일기(孚齋日記)를 훑어보다가 병술년(1706년) 인천의 어살(물고기를 가두어 잡는 전통어법)에 관한 기록이 재밌다며 번역문(서울역사편찬원, 2020년)을 보내왔다. 그중에서 흥미로운 구절이 눈에 띄었다. “물에는 물고기 귀신이 있는데…
‘청어 뼈 위에 세워진 도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설명할 때 붙는 수식어다. 북대서양은 청어 최대 서식지로 암스테르담은 청어잡이 전진기지 역할을 해왔다. 북유럽은 청어를 바다의 밀이라 부를 정도로 중요한 식량 자원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절임 청어, 핀란드의 훈제 청어, 스웨덴의 …
조선시대에 많은 사람이 표류해 죽었고, 일부는 귀환해 이야기를 남겼다. 특히 제주와 뭍을 오가던 배가 난파되거나 표류하는 경우가 많았다. 10여 편의 표류기가 수록된 ‘지영록’(2018년 보물 지정) 번역서 편찬 업무를 담당할 때 궁금한 점이 있었다. 지영록에 ‘김대황표해일록’이라는 …
조기는 운다. 개구리 우는 소리와 비슷하다. “조기 떼가 떠올라 우는 소리에 주민들은 잠을 설쳤어요. 물속에서 우는 조기 떼는 대나무 속을 뚫은 울통으로 찾았습니다. 대나무가 어군탐지기 역할을 한 겁니다.” 연평도 토박이 정씨 노인(94)은 조기 어군이 서해로 북상하지 않은 지 50여…
골목골목마다 비린내가 풍겼다. 굴비의 본고장에 서 있음을 냄새로 느낄 수 있었다. 전남 영광군 법성포는 인도 간다라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첫발을 디딘 포구로 알려져 있다. ‘성인이 불교를 들여온 성스러운 포구’라는 의미가 법성포(法聖浦) 지명에 들어 있다. 간다라 유물관, 간다라 형…
맛은 개별적이지만 밥상은 공동체 문화를 응축한 축소판이다. 맛의 문화적 정보는 사회마다 다른데 같은 사회 내에서도 연령층에 따라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며칠 전 청어조림이 구내식당 메뉴였다. 예상대로 식당은 한산했다. 오전에 같은 부서 직원들이 모여서 점심 메뉴를 놓고 이야기하는 소…
바닷가는 스산했고 샛바람은 짠 내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생선 장수 노파만이 인적 없는 다대포항 한쪽 모퉁이를 지키고 있었다. 불쑥 나타난 우리 일행의 왁자지껄한 소리에도 노인의 시선은 바다를 향해 있었다. 중년 남성 너덧이 생선을 구입할 거란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는 듯 가까이 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