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어보면 응답자 가운데 다수는 고구려 19대 광개토왕을 지목하곤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전장을 누비며 고구려를 일약 ‘동북아의 패자’로 견인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온 세상을 호령하던 광개토왕은 재위 22년이 되던 서기…
올해는 경주 금령총 발굴 100주년이다. 1924년 조선총독부가 긴급 예산을 투입해 특별히 발굴한 이 무덤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기마인물형 주자(注子), 보물로 지정된 금관과 금허리띠 등 신라사 해명에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 다양한 유물이 쏟아졌다. 이 무덤의 경우 신라 단독 무덤 가…
백제사에서 근초고왕은 탁월한 군주로 손꼽힌다. 동진, 신라, 왜와의 외교로 고구려 남진을 저지한 데 이어 몸소 3만 대군을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해 고구려 고국원왕을 죽였으며 각지로 땅을 넓혀 백제 최대 판도를 이루었다. 생전 뭇사람들의 존숭을 한 몸에 받았을 그가 세상을 뜨자 상주인 …
인간에게 죽음이 숙명임을 알면서도 막상 그에 직면하게 되면 당사자도 가족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요절했을 경우 더욱 그렇다. 남겨진 사람들은 망자가 사후 세계에서 삶을 이어가리라 여기거나 정성스럽게 장례식을 준비하며 지극한 슬픔을 잊으려 한다. 그것은…
2003년 이래 8년 동안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부지에 대한 유적 조사가 실시됐다. 그 과정에서 야외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다양한 유적이 확인되었는데, 특히 금강 북안의 연기군 나성리(현 세종시 나성동) 일대에서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백제 때 만든 건축물 흔적들이…
고려 때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 명장’ 김유신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나라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꼴 베고 가축 기르는 아이들도 그를 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시점까지 이어지던 김유신의 명성도 무심한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세인들의 기억에서 차츰 희미…
백제 왕 가운데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인물로 제26대 성왕이 꼽힌다. 그는 전장의 태자(훗날 창왕)를 위문하러 관산성으로 향하다 신라군에 사로잡혀 참수돼 구덩이에 묻혔는데, 후에 신라는 그의 머리뼈를 관청 건물 계단 아래로 옮겨 묻어 백관들이 그 위를 지나가게 했고 나머지 뼈는 백…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중국 여러 나라와 교류하면서 성장하였고 독특한 청동기문화를 꽃피웠다. 그것이 남쪽으로 전해지면서 한반도 중남부도 청동기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시대에는 농사 짓기가 일반화되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큰 마을이 만들어졌으며 공동체 사이의 갈등이 생겨…
신라 천년고도 경주에는 동산처럼 우뚝 솟은 무덤들이 즐비하다. 그곳에서는 황금빛 찬란한 금관을 비롯하여 수많은 보물이 쏟아진다. 그 무덤에는 각기 숫자 일련번호가 붙어 있는데, 중요 유물이 출토된 무덤의 경우 별도의 이름으로 불린다. ‘서봉총’도 그러한 무덤 가운데 하나다. 금관총과 …
우리나라의 국보 355건 중 백제 때 만들어진 것은 20건에 불과하며, 그중 12건이 무령왕릉 출토품이다. 백제 700년 역사와 탁월한 문화 수준을 생각한다면 백제 전시기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국보가 이토록 적다는 점은 매우 의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계일학과도 같은 존재가…
고려 때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가 기원전 57년에 세워진 이래 경순왕이 나라를 들어 고려에 바친 서기 935년까지 줄곧 경주에 도읍한 것으로 기록했다. 신라의 건국 시점을 그대로 수용하는 학자는 적지만 경주가 신라의 천년 왕도였음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이는 고구려나 백제와는 다…
고려 때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를 지으면서 이전의 역사책을 인용, 가야 여러 나라의 이름을 열거했다. 그 가운데 비화(非火)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비화라는 두 글자에 “지금의 창녕이라 하는데, 아마도 고령의 잘못인 것 같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지난 30년간 가야사…
서기 660년 7월 백제 사비성은 화염에 휩싸였다.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계백 장군의 5000 결사대마저 황산벌에서 패배했고, 나당연합군의 협공에 백제는 나라의 역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가 며칠 만에 항복하고 말았다. 늘 수준 높은 문화강국을 자부하던 백제의 최후는…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전국의 화장률은 92.1%에 달한다. 2006년 화장률이 매장률을 추월한 이래 주검을 화장하는 방식이 대세가 되었다. 또한 정부는 연초 화장 후 뼛가루를 산이나 바다에 뿌리는 산분장(散粉葬)의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제는 화장 그 이후에 …
리아스식 해안 지형의 우리나라 남해안은 경관이 수려하고 해산물이 풍부하다. 또한 파도가 잔잔해 오랫동안 해상교통로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의 조운선이 그곳을 거쳐 한양으로 향했고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 장군이 그곳을 필사적으로 지켰기에 조선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었다. 남해안 항로는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