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 각국은 생활 쓰레기 처리로 몸살을 앓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데, 쓰레기 가운데 일부는 소각되고 일부는 땅에 묻힌다. 어떤 나라는 넘쳐나는 쓰레기를 감당할 수 없어 막대한 돈을 내고 쓰레기를 외국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생활 쓰레기 문제는 장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신라는 흔히 ‘눈부신 황금의 나라’로 불린다. 신라에서 황금이 많이 난다는 옛 기록과 더불어 경주 분지 곳곳에 분포하는 거대 무덤 속에서 화려한 황금 유물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신라 고분에서 발굴된 귀금속 세공품 가운데 9건이 국보, 20건이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대부분이 금관…
서기 523년 백제 무령왕이 승하하자 왕자 부여명농이 왕위를 이었으니 그가 바로 성왕이다. 그는 귀족들의 힘이 여전히 강고한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책을 모색해야 했다. 고심 끝에 그는 부처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가 우선 받아들인 것은 ‘왕이 곧 부처’라는 중국 왕실의 불교 신앙…
우리 역사에서 가야는 ‘미지의 왕국’, ‘잃어버린 왕국’으로 불린다. 가야에 속한 나라가 몇 개국이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국명이 전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나라가 어디에 있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가야에 관한 역사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서에 종종 등장하는 다라…
우리 역사에 청동기 시대가 존재했는지를 둘러싸고 학계에선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다.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학자들은 한반도에 청동기 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면서 일부 알려져 있던 청동기는 모두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광복 후 우리 학계는 그러한 주장을 비판하며 한국적인 …
우리 역사상의 여러 고도 가운데 경주는 왕도로 쓰인 기간으로 보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단 한 번의 천도도 없이 천년 가까이 경주에 도읍했다고 한다. 고대의 전쟁에서 왕도를 잃는다는 것은 곧 나라의 패망을 뜻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일이었기에 신라는 왕도를 방…
며칠 전 경북 경주 황남동 120호분 발굴 성과가 언론에 공개됐다.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이 무덤에서는 금 귀걸이, 허리띠 등이 정연한 모습으로 출토됐다. 학계에선 귀걸이의 맨 위쪽 고리가 가늘다는 점에 주목해 무덤 주인공을 신라 귀족 남성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삼국시대 무덤에서 흔…
학계 일각에선 고구려, 백제, 신라 중심의 삼국시대론을 비판하며 사국시대론을 주장한다. 대가야, 소가야, 금관가야, 아라가야 등 가야 여러 나라가 6세기 무렵까지 엄연히 존재했고, 특히 대가야의 경우 국제적 외교 무대에서 활약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대가야가 두각을 나타낸 시점은 5…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은 백제와 조선의 왕도였고, 지금은 대한민국의 수도다. 서울이 중시된 이유로 한강의 이로움을 손꼽는 견해가 많다. 한강은 내륙 곳곳과 바다를 이어주는 거대한 물줄기였고 때론 외침을 막아주는 자연 해자로도 기능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나라의 명운을 걸고 한강…
1983년 이래 언론 지상에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는 생소한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일본 고훈 시대 무덤인 전방후원분이 왜 우리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걸까. 봉분의 외형이 열쇠구멍처럼 생긴 왜계(倭系) 무덤이 우리나라에서 차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접한 일본 학계는 반…
4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신라는 그리 대단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랬던 신라는 5세기 이후 거대한 왕릉을 만들고 영역을 확장하는 등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 사람들은 신라가 후에 가야, 백제, 고구려를 차례로 꺾고 한반도의 패자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
백제에는 유독 비참한 최후를 맞은 왕이 많다. 그중 성왕의 죽음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는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외교 역량을 발휘하는 등 ‘영웅군주’로서의 면모를 보였지만, 단 한 번의 판단 착오로 신라군에 사로잡혀 목이 잘렸다. 그 때문에 전륜성왕이 되려던 그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신라는 ‘황금의 나라’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신라 유적에서 황금 유물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 옛날에도 신라 황금은 유명했다. 이웃한 왜인들은 신라에서 금과 은이 많이 난다고 부러워했고, 멀리 서역에서 신라를 찾은 한 이방인은 자신의 견문록에 신라엔 금이 너무 흔해 개목걸이까지 금으로…
인류는 지구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신체적으로 나약했으나 탁월한 인지능력을 지녔기에 멸종을 피했다. 불을 이용하고 도구를 만들어 쓰면서 차츰 두각을 나타냈지만 먹거리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아 계절별로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다. 그러다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정착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무왕은 31명의 백제왕들 가운데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 무왕이 선왕인 법왕의 아들이라고 기록했지만, 무왕을 ‘강화도령’ 철종처럼 초야에 묻혀 살던 방계 왕족으로 보는 학자가 많다. 특히 삼국유사에는 그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이 실려 있다. 그는 과부 어머니와 연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