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인들은 해외에 나간 뒤 약 4일째가 되는 날 필사적으로 한식당을 찾아 나설까?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마침내, 줄까지 서가며 외국에서 한식을 먹고자 하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들이 그리워하는 건 매운 음식이나 발효 음식, 찰기 흐르는 쌀밥 같은 것이 아니다…
콜롬비아에 온 지 한 달 반이 흘렀다. 새로 나온 소설의 홍보차 고국을 방문한 건데 사람들은 나에게 한국에 대해서만 물어본다. 요즘 가장 화젯거리인 나라에 대해 알고 싶어서 다들 안달이다. 케이팝에서 보여주는 영상과는 완전히 다른 일상을 사는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대답은 실망스럽…
현대인에게 불평은 생활의 일부다. 나도 정신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주 불평을 늘어놓는다. 특히 이미 정착된 것들의 불합리성이 변화해야 한다고 믿을 때 그렇다. 이 불만이 분한 마음과 맹목적인 분노로 이어지면 무척 해로워진다. 서울의 지하철은 그런 점에서 불평할 게 하나도 없…
매년 이맘때가 되면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이유로 내가 태어난 곳으로부터 이토록 멀리 떨어져 사는 건지. 내가 쓰는 책들도 모두 스페인어인데. 왜 한국에서 사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집중한다. 다행히 그 이…
예전 우리 집은 그 일이 일어났던 골목으로부터 5분 거리에 있었다. 지금은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지만, 여전히 그 부근을 자주 지난다. 이태원은 우리 동네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벌써 9년이 훌쩍 지났고, 그렇기에 서울에서 산 시간도 9년이 넘었다. 내가 나고 자란 보고타를 …
2013년의 어느 날 밤이었다. 한국에 이주한 후 처음으로 내가 서울 사람처럼 느껴진 날이었다. 나는 조계사 대문 밖에 서 있었다. 부처님오신날의 주요 행사인 연등회 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저기 멀리서 승려들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
‘애프터 양’을 본 지 두 달이 넘도록 아직 그 영화가 나의 인생 영화인가 아닌가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이면서 일본의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예명으로 활동하는 코고나다가 이야기 속에서 그려내는 세계 때문일까? 다양한 인종이 가족을 이루어 점심 식사로 일본 라면을 먹고 완…
최근에 서울의 거리에서 너바나의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을 자주 목격했다. 그걸 보며 든 생각은 이랬다. ‘로고가 90년대 분노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록 밴드라는 건 전혀 모르겠지?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가 유행했을 때처럼 말이야.’ 그저 쿨한 이미지를 대표하는 상표처럼 남아 …
지난주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다. 왠지 모르게 내가 한국 단편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흐르던 노래의 제목이 ‘안개’라는 걸 알고 난 후에는 영화와 단편 사이에 연관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고,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들을 찾아 읽어보기 시작했…
실외 마스크 착용이 완화되기 전날, 나는 한국 친구와 내기를 했다. “98%의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닐걸?” 내 말을 들은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야,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야. 내 생각엔 60% 정도?” 결과는? 우리 둘 다 틀렸다. 다음 날 밖에 나가 보니 한국인 …
10여 년 전 출판했던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장인어른의 명료했던 정신은 날마다 흐려져 가고 있었다. 수정은 아버지가 어떨 땐 같은 말을 무한 반복했다가 어떨 땐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했다. 텔레비전과 신문을 보며 침묵으로 시간을 보낸다. 아파트에 들어서서 인사를 드릴 때면…
이제 더 이상 서울에서 내가 자주 가던 식당이, 커피숍이, 술집이, 서점이 문을 닫는 걸 보는 게 슬프지 않다. 예전엔 내가 좋아하던 곳이 문을 닫으면 실망감이 적어도 일주일은 가곤 했다. 지금은, 혼자 남겨진 기분을 극복하기 위해 저들은 그저 불교의 무소유를 행할 뿐이라고 스스로 위…
생각건대, 한국이 진짜 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 번째, 피자와 함께 먹는 피클과 치킨에 딸려 오는 절임무의 포장을 뜯었을 때 국물이 새지 않는 뚜껑을 디자인할 것. 두 번째가 진짜 중요한데, 출판사들이 사진집의 미적 가치를 이해하고 독자들…
지난해 연말에 가족을 만나기 위해 3년 만에 콜롬비아에 갔다. 길거리와 집들, 가게 곳곳에서 한 해를 보내는 내용의 가사를 담은 옛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택시를 탔을 땐 마치 커피 농장이나 사탕수수밭의 농부처럼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고향이 꽤나 그리웠던 것이다.…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머리 위에서 아주 작은 무언가 날아다니는 것을 흘깃 보았다. 아마 먼지 덩이겠지. 책으로 눈을 돌렸다. 1분 뒤 그게 다시 돌아왔다. 먼지가 또 있나? 그럴 리가 없다, 어제 청소했는데. 곧 의문이 걷혔다. 지구에서 가장 불쾌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앵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