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야말로 변치 않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까. 타자를 사랑하거나 증오해도, 결국 자신을 통해서 사랑하고 증오하는 법. 고통도 쾌락도 슬픔도 즐거움도 결국 자신이 느끼는 법. 그러다 보니 도대체 자신에게 무관심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신을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다. 왜? 자신을 대상…
미셸 투르니에가 말했듯이, 성탄절부터 정월 초하루까지의 일주일은 시간 밖의 괄호와도 같다. 실로 이상하지 않은가. 성탄절이 띄운 기분은 어디로 착지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그 마음의 공백 속에서 한 해의 기억은 눈발처럼 뿔뿔이 흩어진다. 그러다 보면 자제력을 잃은 나머지 자칫 맥락 없…
평상시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평상시 한국인들은 한국을 의식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한국인은 그저 인간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다르다. 그저 인간이기를 그치고 새삼 한국인이 된다. 음식의 경우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한국에서 한국인은 그저 음식을 먹는다. 백반을 먹을 때조…
“따뜻한 순백의 색깔, 너그러운 형태미, 부정형의 정형이 보여주는 어질고 선한 맛과 넉넉함, 그 모두가 어우러지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정녕 한국인의 마음, 한국인의 정서, 한국인의 삶에서만 빚어질 수 있는 한국미의 극치.” 이것은 달항아리(민무늬 백자대호)에 대한 전(前) 문화재청…
이른바 아이돌 비즈니스에 정통한 사람이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스타가 되는 과정에서 외모의 제약은 예전보다 덜하다고. 왜냐고? 성형 수술이 발달해서라고. 어지간한 외모는 거의 다 바꿀 수 있다고. 그러나 해가 지지 않는 대한민국 성형계도 어찌 못하는 영역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머리통…
비누는 가장 일상적인 사물이다. 구본창은 그 비누를 찍는다. 구본창의 비누 사진은 일상 소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한 현대 사진 흐름의 일부다. 그런데 왜 하필 비누란 말인가. 비누는 소모품이다. 오랫동안 곁에 두고 함께 할 손때 묻은 물건이 아니라, 잠시나마 곁에 묻어온 손때를 …
삶은 미로(Maze)일까, 미궁(Labyrinth)일까. 미궁은 하나의 길이 이리저리 돌다가 결국은 귀착지에 이르는 구조이지만, 미로는 갈림길이 도처에 있어 귀착지에 이른다는 보장이 없는 구조다. 삶은 미로인가, 미궁인가.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로를 닮았고, 결국 …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저 사람과 관계를 한 차원 더 고양시키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 적절한 스킨십을 시도하라. 촉각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가능한 경험이기에 그만큼 내밀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친구나 연인 …
이 더운 여름, 이탈리아의 오래된 도시 피렌체에 도착했다. 학생들과 오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제국의 주변을 둘러보기로 약속했었다. 제국의 주변에 있었지만 조공국이 되지 않으려 몸부림친 국가들을 살펴보기로 약속했었다. 유럽 중세 및 르네상스 시기 도시국가들의 흔적을 답사하…
“돼지야!” 누군가 당신을 부른다. 자,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대체 어떤 놈이 감히….” 날씬한 몸이 인기 있는 요즘, 사람들은 대개 날씬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게 비록 거짓말이라고 할지라도. 따라서 살찐 존재의 대명사 “돼지”는 긍정적인 함의를 띠기 어렵다. 그러나 돼지…
먼저, 윤두서(1668∼1715)를 보라. 윤두서는 17세기 조선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던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이다. ‘어부사시사’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윤선도가 함경도에 유배되었을 때, 큰아들에게 집안 관리 잘하라고 당부하는 편지를 쓴다. 그 편지는 ‘충헌공가훈(忠憲公家訓)’이…
현대 미술 작품 앞에 서면 종종 난감하다. 예컨대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i)’ 같은 작품 앞에 처음 서면, 특히 난감하다. 뭐야, 이거. 무서워… 음… 이런 건 나도 하겠는데. 그도 그럴 것이 깨끗한 화폭 위에 칼자국을 쓱쓱 낸 것에 불과한 것처럼 …
당신도 어쩌면 밥보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밥을 먹고 입가심으로 디저트를 먹는 게 아니라, 디저트를 먹기 위해 밥을 먹는 사람인지 모른다. 잡지를 사다 보니 부록을 갖게 되는 게 아니라, 부록이 탐나서 잡지를 사는 사람인지 모른다. 읽기 위해 책을 사는 게 아니라, 딸려…
아직 2023년의 봄이지만, 2023년 최고의 인기 드라마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될 것이다. ‘더 글로리’의 열기가 제법 가라앉은 요즘에도 나는 사라(김히어라 분)의 욕설 연기가 담긴 동영상을 돌려보곤 한다. 타락한 목사의 딸인 사라는 정확한 억양으로 숙련된 욕설 솜씨를 …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그 유명한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와 돈독한 우정을 나눌 정도로 프랑스 혁명의 적극적인 지지자였다. 그러나 감옥에 가서 고초를 겪은 뒤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조력하는 궁정화가로 변신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그림 ‘알프스 산맥을 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