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음악 잡지 읽는 걸 즐겼다. 좋아하는 음악인들의 기사를 읽는 것도 좋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인터뷰도 즐거웠다. 그런 기사들에서 가끔씩 보게 되는 이름이 있었다. 이판근이란 낯선 이름이었다.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이판근에게 음악 이론을 배웠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
1993년, 모두 네 종의 김민기 전집이 발표됐다. 별다른 제목도 없이 그저 ‘김민기 1’ ‘김민기 2’ 이렇게 제목이 붙어 있었다. 넉 장의 음반에는 그간 김민기가 발표해 온 노래가 망라돼 있었다. ‘아침이슬’ ‘친구’처럼 유명한 노래를 다시 불렀고, 그전까지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얼마 전 조카의 중학교 졸업식에 갔다가 졸업식 노래로 공일오비의 ‘이젠 안녕’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졸업식 노래라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졸업식 노래’만 기억하는 나에겐 살짝 충격이었다. 해방된 이듬해 ‘졸업식 노래’로 공식 제정된 노래는 점차 시대에 맞지…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다. 눈이 내릴 때마다 찾아 듣는 각자의 겨울 노래가 있을 것이다. 미스터투의 ‘하얀 겨울’이나 터보의 ‘회상’이 대표적이고, 최근에는 자이언티와 이문세가 함께 부른 ‘눈’도 고전의 대열에 합류해 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겨울이 되면 찾아 듣는 노래들이 몇 …
들국화의 ‘영광의 시대’는 너무 짧게 끝나버렸다. 들국화 1집은 발표와 함께 명반의 자리에 등극했다. 최성원과 조덕환, 전인권이 만든 곡들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고, 동시에 한 장의 앨범 안에서 완벽하게 맞물렸다. 하지만 원년 기타리스트이자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와 ‘세계로 가는 …
‘온스테이지’가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막을 내렸다. 온스테이지는 네이버 문화재단에서 운영해온 음악 영상 플랫폼이다. 2010년 11월 18일 첫 영상을 공개하고, 올 11월 16일 마지막 영상을 올렸으니 13년간의 긴 여정이었다. 온스테이지의 역할은 말하자면 음악인에게 일종의 명함을 …
10년 전쯤 한 기획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한국, 특히 홍익대 인근을 중심으로 도심형 쇼케이스 페스티벌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해외를 돌아다니다가 홍대를 보고 있으면 키는 2m인 애가 천장은 1m인 곳에 있는 느낌이다. 누군가 이 천장을 높여 주거나 부숴 주거나 해야 …
이맘때쯤이면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들려올 것이다. 큰 인기를 끈 적은 없지만 34년 동안 노래는 살아남았다. 이런 노래를 보통 ‘스테디셀러’라 부른다. 한 시절 엄청나게 반짝였지만 금세 사라지는 노래들도 있다. 이 노래는 ‘베스트셀러’였던 적이 없다. 하지만 스테디셀러가 잠깐의 베스트…
작은거인 2집은 불멸의 작품이다. 한국 록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하드록 앨범이다. 작은거인은 무당, 마그마와 함께 한국에서 헤비메탈이 등장하기 이전 가장 강렬한 소리를 들려줬던 밴드였다. 특히 작은거인의 두 번째 앨범은 첫 앨범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뛰…
1988년 8월 6일, 이상은은 ‘벼락스타’가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됐다”는 말이 흔하게 쓰이지만 이상은에게는 그 하룻밤마저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날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를 노래하는 이상은의 모습을 본 많은 이가 그의 대상 수상을 점쳤다. 그만큼 이상은의 등장은 놀라웠다…
8월 4일부터 6일까지, 폭염은 여전했다. 공기는 습해 사람을 죽 처지게 했고, 불볕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그 뜨거운 날들에 열기를 더하려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3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는 사흘간 무려 15만 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갔다…
조규찬은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유재하가 당시 잘 쓰지 않았던 코드를 사용해 곡을 만들었다며 그의 음악이 왜 지금까지 추앙받는지를 이야기했다. ‘팝’ 키드였던 조규찬에게 유재하의 ‘가요’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가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가 아니라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참가…
윤상은 악기를 처음 배우던 때부터 좋은 ‘팝’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또래 친구들이 대부분 강렬한 하드록과 헤비메탈에 빠져 있을 때 윤상은 듀란듀란 같은 팝과 뉴웨이브 음악에 매료됐다. 그의 취향은 또래 사이에서도 돋보였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밴드 ‘페이퍼 모드’를 결성해 활동했던 윤…
처음 어어부 프로젝트가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배우 트위스트 김이 손발이 결박된 채 겁에 질린 모습으로 있는 앨범 커버부터 예사롭지 않았고, 그 안의 음악은 더 놀라웠다. 백현진, 장영규, 원일, 세 명이 만들어낸 음악은 그동안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음악이…
그동안 칼럼에서 의식적으로 케이팝 혹은 아이돌 음악을 다루지 않았다. 많이 나오는 걸 넘어 과잉이라 생각하는 케이팝과 관련한 말과 글에 굳이 나까지 이야기를 보태고 싶지 않아서였다. 언론에서 이른바 ‘아이템’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안다. 그래서 난 케이팝을 아이템으로 정하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