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은 1993년 6월 ‘컴백’ 무대를 가졌다.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곡 ‘하여가’를 TV를 통해 대중에게 처음 선보이는 자리였다. 지금 다시 들어봐도 ‘하여가’가 파격적인 건 변함이 없다. 헤비메탈의 갈래에서도 극단적인 형식인 스래시 메탈의 기타 리프를 곡의 뼈대로 삼고 …
봄이 되면 음악가들을 선발하는 이런저런 심사 의뢰가 들어온다. 공연에 세울 음악가들, 지원이 필요한 신인 음악가들 등 성격도 목적도 다 다르다. 요청이 오면 되도록 심사에 참여하려고 한다. 나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모르고 있던 새로운 음악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때로…
2015년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최성수가 올랐다. 그의 옆에는 러시아에서 온 아코디언 연주자 알렉산드르 셰이킨이 있었다. 최성수는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해후’를 불렀다. 감히 ‘기품’이란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고급스러운 무대였다. 다른 무대에선 아코디언 대신 바이올린과 …
‘뽕’이란 짧은 낱말 하나엔 온통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하다. 마약을 지칭하는 은어이기도 하고, 트로트를 폄하할 때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뽕끼가 있다’는 말도 대부분 부정적인 경우에 많이 쓰인다. 작사가이자 JNH뮤직 대표인 이주엽은 2년 전 한 일간지에 “성인 가요의 미학적 파산…
1993년의 서울 송파구 마천을 생각한다. 마천은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외국 음악가의 내한공연을 보기 위해 올림픽공원을 찾을 때 타던 지하철이 마천 혹은 상일동행 5호선 열차였기 때문에 친숙함 정도를 갖고 있을 뿐이다. ‘유앤미 블루’의 음악을 듣다 보면 자연스레 마천…
숨어 있는 가수를 발굴하는 ‘싱어게인2―무명가수전’ 결선 무대에 깜짝 손님이 등장했다. 지난해 시즌1의 수상자들인 이승윤, 정홍일, 이무진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1년 만에 친정 프로그램에 금의환향해 시즌2의 참가자들과 함께 특별한 무대를 꾸몄다. 그 가운데 이무진의 모습은 특히 …
40여 명의 합창단이 함께 무대에 섰다. 보컬, 기타, 베이스, 첼로를 둘러싼 합창단이 “마녀가 나타났다!”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1월에 열린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받은 이랑의 퍼포먼스는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가 자주 노래하는 홍익대 앞 작은 공간보…
행사 시작은 오전 11시. 여유 있게 30분 전에 도착했지만 이미 수백 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헛웃음이 날 만큼 긴 줄이었다. 제10회 서울레코드페어 행사. 말 그대로 LP레코드를 사고팔기 위해 전국의 모든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는 날이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동안 행사가 …
1960년과 1965년. 어떤날의 두 멤버 조동익과 이병우는 자신들의 첫 앨범 표지에 각각 태어난 해를 적어 두었다. 첫 앨범이 1986년에 나왔으니 이제 스물여섯, 스물하나의 젊은 나이였다. 이들은 기성 가요와는 다른 어법으로 주목받았다.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줬고, ‘가창력’이 없는…
가장 강렬했던 첫 기억은 심형래의 크리스마스캐럴이었다. 당대 최고의 희극인 심형래는 유행어를 이용해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릴까 말까”란 구절을 반복했다. 그의 인기만큼이나 판매량 역시 많았다. 심형래뿐 아니라 인기 개그맨 대부분 캐럴 음반을 발표했다. 최양락은 ‘네로 25시’…
‘1993년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자 이주영’이라고 사인 연습을 하던 소녀가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던 이주영은 자신이 대학을 입학하는 해인 1993년에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음악 취향은 바뀌어 대학생이 된 그가 참여한 대회는 강변가요제가 아닌 유재…
어김없이 김현식과 유재하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이용이 장식하면, 11월의 시작은 유재하와 김현식의 노래가 연다. 유재하와 김현식은 1987년과 1990년, 3년 간격을 두고 11월 1일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유재하는 교통사고, 김현식은 간경화가 사인이었다. …
조성모의 ‘클래식(Classic)’은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리메이크 음반이다. 160만 장 넘게 팔리며 리메이크 음반 가운데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영애와 김석훈, 손지창 등이 출연해 일본 삿포로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도 화제가 되었다. 조성모의 전성기를 더 빛나게 해주었지만…
‘송골매’ 리더 배철수는 송골매의 역사를 가리켜 “연주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의 역사”라고 표현했다. 배철수는 아마추어 대학생 밴드로 시작했다는 한계로 연주력에 대해 늘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사랑과 평화’는 가장 대표적인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가장 연주를 …
‘시인과 촌장’의 새로운 앨범 준비를 마친 하덕규는 대구로 내려갔다. 대구 나이트클럽 무대에 서며 연주하던 기타리스트 함춘호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함춘호의 실력은 이미 서울에까지 소문이 나 있었고, 그런 그를 시인과 촌장의 새 멤버로 영입하기 위해 대구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198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