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은 한국 근대사의 분수령이었다. 김옥균 암살, 동학농민군 봉기, 청일전쟁 발발이 연이어 일어났고, 무엇보다도 갑오개혁(갑오경장)이 시작됐다. 내란(동학봉기)과 외세(일본침략)의 틈바구니에 좁게 난 낭떠러지에서 시도된 이 ‘혁명적’ 개혁은 개항 이후 조선사회가 쌓아온 …
《1894년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은 1637년 병자호란 후 무려 250여 년 만이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전쟁이 없는 것은 세계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그것은 팍스 시니카(Pax Sinica·청에 의한 평화)로 가능한 것이었다. 조선…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을 일본 당국이 절해고도(絶海孤島), 오가사와라섬에 유배시킨 것은 지난 회에 살펴보았다. 여기서 약 2년간 고독, 질병과 싸우던 김옥균은 이번에는 홋카이도로 이송되었다. 일본 벽지에 그를 가둬 정치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 일본 정부의 의도였다. …
《1884년 겨울, 갑신정변에 실패한 김옥균은 일본으로 도주했다. 그의 망명은 전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 신문들은 그를 ‘조선판 메이지유신’을 시도하다 실패한 비운의 혁명가로 묘사했다. 이후 일본은 정치적 곤경에 빠진 조선(한국) 정객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유길준, 이준용(…
《우리는 흔히 한일 근대사에 관련된 일본 정치인 하면 이토 히로부미를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오랫동안 한국 문제에 간여한 사람은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1836∼1915)라는 인물이다. 막부 타도에 앞장섰던 조슈번 출신으로 메이지유신의 원훈 중 한 명이다. 이토 히로부미보다…
《조선에서 흥선대원군의 10년 권력이 끝나가던 1873년 겨울, 일본에서도 메이지정부의 운명을 가를 거대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메이지유신의 영웅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정한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1868년 메이지유신 발발 후 일본은 조선에 신정부 수립을 알리고 국교…
《일본에서는 18세기 말, 19세기 초부터 해외 팽창론이 등장한다. 당시 각국이 각축을 벌이던 유럽이라면 모를까, 임진왜란 이후 수백 년간 전쟁을 겪지 않았고, 또 그럴 위기도 없었던 일본이니 희한한 일이다. 러시아가 홋카이도 부근에 출몰하는 것을 목격한 혼다 도시아키(本多利明)는 “…
《1880년경부터 1894년 청일전쟁 발발까지 약 15년간은 조선에 기회의 시기였다. 1876년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아직 침략적이지 않았다. 아니, 조선을 침략할 만한 국력이 없었다. 일본은 독립을 유지하고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는 게 능력의 한계치였다. 일본이 조선을 침…
《임진왜란 이후의 통신사 파견을 들어 당시 한일관계를 친선외교라고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파견 횟수를 보면 대략 20년 만에 한 번밖에 안 된다. 가뭄에 콩 나듯 간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통신사는 에도(도쿄)까지 가지 않고 쓰시마에서 대충 ‘때웠다’(1811년). 에도까…
《전근대 시기 한중관계는 조공책봉체제하에 있었다. 그런데 악명 높은 이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형식적인 것이었다. 특히 18세기 중엽 이후에는 정기적인 사절단 파견과, 중국을 상국으로 대접하는 외교 의례만 지키면 나머지는 거의 조선의 자유 의사가 존중되었다. 병자호…
《근대일본은 초기부터 유난히 해외팽창욕을 보였다. 이미 도쿠가와 막부는 1855년 아이누인들이 살던 지금의 홋카이도를 직할령으로 삼았고 메이지 정부는 이어서 일본인을 대거 이주시켰다. 그 너머 북방에도 관심을 보여 1875년에는 러시아와 사할린-쿠릴열도 교환조약을 체결하고 쿠릴열도를 …
《1860년 무렵은 동아시아 근대사에서 획기적인 시기였다. 흔히 아편전쟁을 중시하지만 사실 그 영향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는 않았다. 서양 열강은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중국과의 무역이 영 성에 차지 않았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애로우호 사건을 구실로 중국에 난입하여 1860년 베이징…
《1876년 한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가 체결되었다. 그로부터 지난 150년간 겪었던 일본과의 부대낌, ‘파란만장’이라는 말로밖에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역사를 새삼 반추하려 한다. 21세기 초엽인 지금 유쾌하지도 않은 이 기억을 굳이 반추하려는 것은, 이제야 그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