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려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거냐?” 영화 ‘밀수’에서 극 초반 엄 선장(최종원)의 푸념은 윤리와 생활 사이에서의 딜레마를 간결히 함축한다. 그 장면이 의미심장한 건 영화가 이 딜레마를 깊게 파고들겠다는 선언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여기 생활을 옹호하는 인물이 춘자(김혜수)라면, 공…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물, 불, 흙, 공기 등 4원소가 서로 모여 살아가는 도시(엘리멘트 시티)가 배경이다. 사회에서 배척받는 불 원소 소속 여성 ‘엠버’와 도시 주류인 물 원소 소속 남성 ‘웨이드’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이 칼럼에는 영화 ‘엘리멘탈’의 스포일…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여러모로 1980년대적이다. 당시는 미국 영화계가 블록버스터 ‘죠스’와 스타워즈 오리지널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야심만만했고, 모험과 액션의 스케일을 전례없이 키우던 시기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네 편 연출을 연달아 맡은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이 어…
예술이 쉬울 리 없다. 영감이 오길 기다려야지, 작업물에 몰두해야지, 필요한 경우 정부나 지자체 예술가 지원 사업에 서류를 넣을지 고민도 해야 한다. 사업기획·지원서 및 증빙 서류 처리로 머리를 싸매는 것도 적잖은 예술가들의 중요 일과다. 사실 예술 그 자체만큼이나 지원 사업을 비롯한…
1980년대 초 군사독재 시절만 하더라도 만화에서 아이가 어른에게 반말하거나 말대꾸하는 장면을 넣을 수 없었다. 만화 출판 전에 검열을 거쳐야 하는 시기, ‘아기공룡 둘리’ 원작자 김수정 화백은 검열을 피하고자 아이 대신 동물을 의인화하기로 마음먹고, 내친김에 당시엔 잘 쓰이지 않던 …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사수는 엉망진창 내 기사를 뜯어고치며 글쓰기 원칙을 상기시켜 주곤 했다. 그중엔 되도록 동어 반복을 피하라는 것도 있었다. 경제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지적으로 느슨해서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같은 표현을 쓰다 보면 관점이 강조되고, 한쪽 입장으로 …
동명의 게임을 영화화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평이 꽤나 극단으로 갈리는 작품이다. 대표적인 해외 비평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 전문가 지수가 59%에 불과하다. 다수 국내외 비평가들은 단순한 전개와 빈약한 스토리를 흠으로 봤다. 원작 게임 시리즈를 오마주하려는 의도가 영화에 …
앞서 세 편의 ‘존 윅’ 시리즈 영화에서 주인공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은 299명을 죽였다. 최신작인 ‘존 윅 4’에선? 140명이다. 이번 작 상영 시간 169분 동안 1분 20초에 한 명씩 죽여야지 나올 수 있는 숫자다. 존 윅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나? 시작은 복수 감정이…
영화 ‘에어’는 1984년 스포츠용품 회사 나이키가 당시 신인 프로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과 농구화 전속 계약을 맺는 과정을 그린다. 여기까지 들으면 농구 스포츠 드라마일 것 같은데, 아니다. 배 나온 중년 아저씨들이 회사의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초과근무를 하는 비즈니스 드라마…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9∼16편)가 공개된 후, 이 완벽한 복수극에서도 구태여 흠을 잡는 사람들은 동은(송혜교)과 여정(이도현)의 로맨스 분위기를 문제 삼기도 한다. 온전히 복수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도 충분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이 칼럼에는 ‘더 글로리’의 스포일러…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비디오를 시청해 비행 청소년이 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한다.” 1990년대 초중반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에 담겨 있던 건전 영상 캠페인 내레이션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어찌나 오싹하…
어떤 한 시절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뭘까. 그때 실제로 아름다웠던 풍경과 대상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 사람의 내면이 대상을 예민하게 포착한 감수성의 흔적일까. 만약 둘 다라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의 배합은 어떻게 될까. 숱한 세월 속에서 유독 …
어떤 세대에게 만화 ‘슬램덩크’는 인생의 한 시기를 떠올릴 때 경유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1990년대 중후반 농구 만화 연재가 끝난 뒤로도 한참 동안 중고교 각 반에 만화 속 명대사 “나는 천재니까”를 시도 때도 없이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이 하나씩 있었고, 그들은 농구공을…
영화 ‘영웅’은 동명 창작 뮤지컬이 원작이다. 원작은 2009년 초연해 9번째 시즌 공연에 들어간 뮤지컬로 작품성과 수익성은 이미 검증됐다. 영화 크랭크인 때부터 뮤지컬 플롯과 음악 등 흥행 요인을 스크린으로 옮겨 올 수 있느냐가 관심사였다. 그 점만 놓고 보면 영화는 성공이다. …
이대로 실패로 끝날 것 같던 인생 후반 추가시간에도 영화 같은 ‘극장골’이 이따금 터진다.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안다는 흔한 말을 쉽게 놓지 못하는 이유다. 최근 영화계에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전 못지않은 인생 역전골을 터뜨린 이가 있다. 그는 한국 팀이 16강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