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에서는 이런 걸 화두(話頭)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신문에서 ‘월간 에세이 25년간 결호 없이 발간해온 원종성 회장’이란 기사를 발견했을 때 앞뒤 수식어는 모두 사라지고 ‘에세이’라는 단어만 머리에 남았다. 그 세 글자가 나를 자꾸 어딘가로 이끄는 듯했다. 마치 먼 바다 쪽…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회의(UNCED) 취재는 기자로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리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인이 여행을 마음먹기엔 너무나 먼 대척점이었다. 거기서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가 열렸다. 180여 개국의 대통령…
자식이 환갑이 넘도록 살아계신 아버지가 얼마나 될까? 흔치는 않겠지만 아주 보기 드문 경우도 아닐 것이다. 그럼, 그 자식이 아버지와 함께한 60년을 기리며 “참 좋았다”고 반추하는 부자지간(父子之間)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아버지의 백수연(白壽宴)을 여는 자식은 또 얼마나 될까? 백…
“너 컬링 해볼 생각 없냐?” 며루치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컬링이라면 파마? 최상희의 장편소설 ‘그냥 컬링’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으랏차’로 불리는 주인공 차을하의 머릿속 반사작용을 묘사한 대목이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컬링 한번 (인터뷰) 해 보면 어떨까?”라는…
“이러다간 한국에 한자(漢字)를 빼앗기겠다.” 대만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몇 해 전 공개적으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뜬금없는 우려가 아니었다. 우선 대륙(중국)과 교류가 확대되면서 대만 내에서도 간화자(簡化字)의 사용이 늘어났다. 현재 중국 대륙에서 사용되고 있는 간소화…
아무래도 한국 울산 주변의 정황이 심상치 않았다. 변변한 항만시설도 없는 곳에 기계와 시설자재를 실은 대형선박들의 왕래가 부쩍 잦아졌다. 1962년 초, 옛 소련의 신경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울산은 인구 8만5000명 정도의 전형적인 농어촌에 불과했다. …
중국 선장에게 살해당한 이청호 경사의 영결식이 있던 14일, 중국 환추(環球)시보의 사설은 확실히 그동안의 논조와 달랐다. ‘…중국 어민들은 해적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고 있는 이들일 뿐이다. 중국은 강대한 나라지만 중국인은 보편적으로 한국인에 비해 가난하고 교육…
‘장혜영’이라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여학생의 공개 자퇴 선언문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여학생보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다. 신문엔 딸의 자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문자메시지로 ‘믿어야지. 네 인생인데’라고 응원했다는 구절이 있었다. 하지만, 아비의 마음이 어디 그렇기만 하겠…
‘장혜영’이라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여학생의 공개 자퇴 선언문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여학생보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다. 신문엔 딸의 자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문자메시지로 ‘믿어야지. 네 인생인데’라고 응원했다는 구절이 있었다. 하지만, 아비의 마음이 어디 그렇기만 하겠…
나는 결국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왜 그렇게 떠드는 것이냐. 제발 조용히 하라”고. 지난달 28일 오전, 팔만대장경이 보존돼 있는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藏經板殿). 중학생쯤 됐을까, 족히 100명은 됨직한 어린 학생들이 마치 유원지에라도 온 듯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여기저기를 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경보 50km 경기가 열리던 3일 오전, 이탈리아 선수단의 한 임원은 김범일 대구시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 “You put Daegu on the world map!(당신은 대구를 세계지도 위에 올려놨습니다).” 물론 경기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이기도 한 김 …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대통령 선거도 여러 번 취재했고, 사회부 기자 시절엔 대형 노사분규 현장도 숱하게 다녔지만 태풍 ‘무이파’와 가거도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30년 동안 1300억 원을 들인 방파제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정부가 피해보상 및 방파…
세계보건기구(WHO) 말라리아 자문위원을 맡고 있던 가천의과학대 박재원 교수(44)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한기택 판사의 죽음이 떠올랐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책에서 ‘순도 100% 순금의 판사’라고 썼던 그 한기택 판사. 1988년 사법부의 독립과 자성을 촉구하…
강남에 갈 일도 별로 없지만 가로수길은 처음이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기업은행 신사동지점에서 주민센터까지 남북으로 700m 정도 이어진 길. 북쪽으로는 현대고등학교가 보였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의 저자인 건축가 이경훈 교수(국민대)에게 “그럼 본인이 직접 나선다면 어디서부터 …
이태석 신부가 선종한 지 1년 반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울지마 톤즈’를 보고 눈물짓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 그 눈물의 기억조차 조금씩 희미해질 만한 시간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일이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24일 한국천주교 살레시오회에서 마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