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다면 홍시가 되어라. 더욱 달고 달아져서, 늦었음이 아니라 완숙하고 있었음을 알려라. 바람 못 이기고 땅에 떨어졌다면 나무가 되어라. 낙오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할 가치를 품었음을 보여라. 가장 높이 열렸다면 날짐승의 먹이가 되어라. 가장 풍족한 햇살을 받…
물속에서 밖을 쳐다보니 뿌옇게 흐립니다. 사물이 굴절돼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왜곡돼 보인 세상이 원하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더 아름답게 보이니까요. ―전남 장성군 백양사 계곡에서 사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글=이유종 기자 pen@don…
붉게 타오르되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을 것. 경계를 가지지 말고 차별 없이 어울릴 것. 혼자 돋보이기보다 다 함께 더 아름다울 것. 다가올 혹한을 견뎌낼 수 있도록 위안을 줄 것. ―서울 노원구 제명호에서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글=이원주 기자 ta…
대웅전 기와가 되지 못한 가난한 소원들은 부처님 가장 먼 곳에 아슬아슬하게 쌓인다. 조금이라도 부처님 보시기 편할 높은 곳 찾아 간절함의 파편까지 모아 한 층 더 쌓아올린다. 무너지지 말라는 바람까지 하나 더 얹힌 채 담벼락엔 키 작은 소원들이 소복소복 쌓인다. ―경주 불국사에…
‘지금 어디 가는 거지. 아침에 밥 유난히 맛있던데 설마 나 지금 병원 가는 건가. 아님 짝 찾으러 애견카페? 가을이라 좀 외롭긴 했지. 근데 나 발톱 좀 긴데. 그러고 보니 주인님 요즘 나한테 좀 소홀한 듯. 아, 내려서 쉬 하고 싶은데 잠깐 세워주면 안 되나. 지금 맞은편 사람 나…
깊은 파랑에 푹 빠져버린 높은 하늘, 새빨갛게 단풍져 살살 흔들리는 언덕, 몇 달 전엔 아무도 믿지 않았던 기온, 이 언덕 밑에, 시간이 정지한 연인 한 쌍. 진짜가 가짜 같고, 가짜가 진짜 같은 어느 가을날. ―평촌 중앙공원에서 사진=장승윤 기자 tomato9…
끝없이 맴도는 이 길이 때로는 지루하고 버겁게 느껴질 게다. 언제 끝날지 모르니 무섭겠지.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절망적인 생각도 찾아올 거야. 뛰쳐나가서 손 잡아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거란다. 너희가 용기내서 이 길 끝까지 나를 찾아왔을 때 우리 손잡…
그가 다가왔다. 생명수를 들고. 그가 나의 몸을 듬뿍 적시기 전에는 나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글=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구름에 불붙어 타는 그리움이 꺼지고 하늘이 새까만 잿더미로 변하고 나면 날카로운 찬바람이 불어와 나를 斬首합니다. 애써 단장한 꽃이 떨어지는 찰나에도 나는 그 시간이 억겁인 양 읊조립니다. “이렇게/바람 많이 부는 날은/당신이 보고 싶어/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사진=박영…
저 높은 곳에 손 닿을 정도로 커지고 싶은 마음 놓지 말거라. 자랄 수 있다고 끝까지 믿으면 내가 너희를 그렇게 자라게 하겠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며 땀 흘리는 반짝이는 그 순간을 잊지 말거라. 현재를 간직하며 내일을 꿈꾼다면 내가 너희를 그렇게 이루게 하겠다. …
창살을 열어다오 영광스러운 승리자 가까이 보여다오 그 빛나는 얼굴들 내 맘을 태우면서 목청껏 응원함은 바라던 그 승전보 듣기 원함일세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축구 결승 경기장에서 사진=김동주 기자 zoo@donga.com·글=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1. 펄펄 끓던 하늘은 한소끔 식혀 파랗게 2. 그 위에 하얀 솜털구름 넉넉히 뿌려줍니다. 3. 여름내 농익은 꽃사과 가지째 가만히 얹고 4. 장식으로 예쁜 동심 하나 동동 띄운 뒤 5. 선선하게, 여유롭게, 분위기 있게 즐겨줍니다.―경기 파주시에서 사진=박영대 기자…
당신은 그렇게 떠나고 나는 남았습니다. 비어버린 자리엔 뽀얀 먼지만 쌓이겠지만 당신의 흔적을 놓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만날 수 없는 평행선도 언젠가는 만난다는 헛된 믿음을 신앙처럼 붙들고 살겠습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사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
복슬복슬 하얀 털 예뻐 보이지만 누구보다 충성스럽고 사나운 견공. 우리 주인님 힘들고 지치게 만든 태양에 맞서 온몸으로 “으르렁” 중.―김포대교에서 사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글=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은하수 쏟아지는 백두대간에서 하얀 구름 내려다보며 태어났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고원에서 하늘처럼 푸르게 익어간다. 모진 혹서와 서릿발 견뎌내고 발갛게 물들어갈 날 기다린다. ―강릉 왕산면 안반덕길 해발 1100m 안반데기에서 사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