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슬프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하는 한편 언론 탄압도 극에 달했던 1939년 10월. 동아일보는 백제 멸망 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던 실존 영웅의 이야기 ‘흑치상지’를 소설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소설은 첫 장 제목부터 나라 잃은 백성의 참…
동아일보에는 100년 가까이 게재되는 코너가 있다. 1920년 4월 10일자에 처음 등장한 ‘휴지통’과 같은 해 7월 25일자(지령 100호)부터 시작된 ‘횡설수설’이다. 국내 언론사상 최장수 고정란, 칼럼으로 만 97년을 넘어 오늘도 연재되고 있다. 제목에 대해 ‘횡설수설’은 첫…
“저는 미국의 제일인자 슈로더 선수와 병주(병走)하야 육초 팔의 차로 그만 패하엿읍니다. 저는 힘껏, 맘껏, 가슴이 아프도록 뛰엇읍니다. 뻬스트(베스트)를 다하엿읍니다. 조금도 후회가 없읍니다.” ‘오직 뻬스트를 다할 뿐’이라는 제목과 함께 동아일보에 실린 이 기고는 1936년 …
해마다 문학청년들을 ‘몹쓸 열병으로 겨울 들판을 헤매게’(안도현 시인) 만들지만 ‘아무 인맥도 없는 사람이 무턱대고 할 수 있는’(은희경 소설가) 것. 바로 신춘문예다. 동아일보는 1925년 국내 최초로 신춘문예를 시작했다. ‘임꺽정’으로 유명한 홍명희 당시 편집국장 겸 학예부장…
여러분, 동아일보 창간호(1920년 4월 1일자) 제호 디자인에 대한 퀴즈를 내보겠습니다. 1. 동아일보 창간호 제호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2. 동아일보 창간호 제호는 누가 썼을까요. 3. 동아일보 창간호 제호에 있는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번과 …
“신문이 열 냥이면 만평은 아홉 냥이란 말이 있다. 암울하고 억눌렸던 시절, 동아일보 만화는 아홉 냥짜리 값을 해냈다.”(손상익 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지령 3만 호를 맞은 동아일보의 역사는 한국 시사만화의 본류를 열었다. 촌철살인의 풍자는 억압의 시대를 살아가던 독자들에게 가슴이 …
29세의 창립자, 27세의 편집국장, 26세의 정치부장, 21세의 기자. 나이로만 보면 언뜻 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의 구성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 20대 청년들은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의 창간을 이끈 주역들이다. 창립자이자 발기인 대표였던 인촌 김성수는 29세였고,…
‘동아일보(東亞日報)’라는 제호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 민족이 발전하려면 시야를 넓게 해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 나아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왔다. 나라를 강제로 빼앗긴 식민지 현실임에도 제호부터 ‘글로벌’한 포부를 담은 것이다. 제호를 제안한 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