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조각조각 납니다. 군인들에게 쫓기던 긴박함, 할머니와 언니가 함께 먹던 멀건 수프의 냄새, 분홍 드레스를 입었던 저택에서의 식사, 누군가에게 납치될 때 남아 있던 책상 위의 사탕 두 알, 히틀러 앞에서 진정한 아리아 소녀의 모습이라며 받았던 칭찬, 차창 밖에 나타난 자신을 닮은…
앞발을 입에 물고 더없이 행복하게 미소 짓는 치타 한 마리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미어캣 한 무리의 고정된 시선이 속표지의 제목 글씨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책장을 넘기면 초원의 동물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차가 달려오고 있어요. 운전하는 사람이 초콜릿을 입에 물고 …
4월 어느 날,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것처럼 한 동네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사라졌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300명이 넘는 인원이 말입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우리가 겪은 현실입니다. 더 가혹한 건, 사라진 학생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작가가 독자를 판타지에 몰입시키려면 모름지기 뻔뻔함이 있어야 합니다. 천연덕스러운 픽션은 논픽션인 양 어느새 독자에게 스며들지요. 이 책의 장점입니다. 좀 별난 라자르도 가족이 모험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당연히 독자들도 함께 가는 여행이에요. 이 가족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어느 날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모든 자연은 사람들이 접촉하면 안 되는 위험한 것이 되었습니다. 어제까지 사람들을 지켜주던 물, 흙, 꽃, 나무들이 이젠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도망갔지만 그곳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라던 시금치…
발명만큼 창의력과 밀접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볼펜, 클립, 연필깎이, 레고, 치실 등은 누군가의 창의성 덕분에 생겨난 발명품들입니다. 작은 문구류부터 의약품, 가전제품, 비행기, 자동차 등 인류 문명이 발전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발명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발명’…
무심코 책장을 넘기는데, 제일 앞에 있는 몇 줄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늘/강아지 만지고/손을 씻었다.//내일부터는/손을 씻고/강아지를 만져야지.’ 10년 넘게 강아지를 키워서인지, 세상을 보는 저의 무딘 시선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시 제목이 제 마음 같습니다. 함민복 시인의 ‘반성…
포털 사이트에 ‘동생’이란 단어를 입력해 보면 질문들이 놀랍습니다. 존재만으로도 못 견디게 싫으니 어떻게 처치하면 좋겠냐고 하네요. 행동 하나 말 한마디도 봐줄 수 없으며, 어떻게든 그 꼴을 안 보고 살고 싶다는 말도 합니다. 대부분 아이들의 질문이에요. 연관 검색어로 ‘동생 괴롭히기…
표지가 장난감 상자처럼 보입니다. 상자 안에는 로봇 그림이 그려진 강아지 한 마리, 업그레이드 최강버전이라네요. 9.0 버전, 대단한 녀석이 등장할 모양입니다. 미래 어느 날, 주인공 찬이에게 9.0이 배달됩니다. 최신형 동물로봇의 관찰일기를 쓰라는 학교 숙제 때문입니다. 최신형…
붉은색이 유독 눈에 뜨이는 책입니다. 이 색은 주변의 다른 것으로 가는 눈길을 붙들어요. 그런데 흐리고 푸른 계열의 색으로 희미하다싶게 인쇄된 요소들도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는 그 푸른 글씨와 그림에 더 집중할 수도 있겠어요. 이렇게 이 책은 두 가지 색만으로 인쇄돼 있습니다.…
‘천지왕, 백주할멈, 총명아기, 감은장아기, 자청비, 문도령, 정수남, 대별이, 소별이, 오늘이….’ 매우 친숙한 느낌의 이 이름은 우리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것입니다. 신이라 하니 많이 낯선가요? 신의 이름이라면 제우스, 헤라, 하데스, 오딘, 토르 같은 이름을 떠올리는 게 현실이니…
최근 한 미래 전문가가 한 말입니다. ‘2035년이면 드론을 통해 중력의 제약을 극복하는 중력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라고요. 사실 인류는 끊임없이 중력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러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정작 중력의 정체를 명확하게 밝혀내기란 쉽지 않았지…
보슬보슬 털이 가득, 푹신하고 커다란 덩치, 가끔 날고, 꿈속에 들어오고, 나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갑니다. 그곳이 현재의 공간이 아니어도 가능합니다. 내 친구 ‘마로’의 능력입니다. 남들과 섞이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마로가 나타납니다. 마로는 늘 옆에 있으면서 조심스레 아이의 내면…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말을 하지 않거나 글을 읽지 못하는 누구라도 충분히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책입니다. 펼친 책 양쪽에 있는 빨간 점을 마주칠 수 있기만 하면 돼요. 이 책을 활짝 펼쳐놓고 보면 막상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진 않습니다. 하지만 양손으로 책을 모아 덮으면 ‘번쩍!’…
이 책을 소개하는 것에 대해 잠깐 고민했습니다. 부제에서 보듯이 장편 동화 중 다섯 번째 책이고, 게다가 올해 4월에 3, 4권을 이미 소개한 바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책에 대해 한 번 더 글을 쓰려는 이유는 책이 가진 가치에 비해 지금까지 저평가되었다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