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향하는 퇴계(退溪)를 붙잡고 선조가 물었다. 『지금 나라 안의 학자중 누가 으뜸이오』 퇴계의 대답. 『기대승은
개성의 동문밖 영통사(靈通寺) 앞을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가면 기암이 병풍처럼 두르고 수석 아름다운 곳에 물이 모
열린 가능성의 철학, 평등의 철학. 이것이 화담 서경덕(徐敬德)의 성리철학이다. 조선후기 신분평등사상의 원
이율곡의 아버지는 과연 누구였을까. 부인 신사임당과 아들 이율곡의 이름에 가려진 이원수(李元秀)라는 인물. 그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과 함께 16세기를 대표하는 사림이다. 흔히 퇴계를 영
「남쪽에는 하서」. 16세기 도학의 거봉 하서 김인후를 일컫는 말이다. 나이 다섯살때, 누군가 「하늘 천(天)」을
유교는 인간의 모든 이상을 인간 자신의 힘으로 현세 속에서 실현시키려는 인본적 현세간(現世間)주의다. 따라서
불혹(不惑)의 고개를 넘어서며 「물러나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이황. 이를 위해 그는 호마저 퇴계로 짓고 죽는 순
이황(李滉·1501∼1570)이 살다간 16세기는 조선 지성사(知性史)에서 볼 때 사림(士林)의 성장기로 규정할 수 있다. 「사(
조선 중기 남명 조식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 사림파, 즉 남명학파의 사상세계는 그동안 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영남 동북쪽 예안의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70)과 서남쪽 산청의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72)은 16세기를 살았던 도
개혁가들의 생애에 대한 평가가 그러하듯 조광조에 대한 평가 역시 두갈래다. 조광조가 가고 세월이 흐른 뒤 숙
조선의 대표적 개혁사상가인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1482∼1519). 당시 사람들은 그를 두고 「광자(狂者)」 「
《시대가 선비를 만드는가, 선비가 시대를 이끄는가. 법이 흔들리고 원칙이 무너지는 이 시대, 고결한 선비정신
삼봉 정도전(三峰 鄭道傳)과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위화도회군과 역성(易姓)혁명으로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