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쓰마 도예를 이어가고 있는 도원(陶苑)은 가고시마 현에 1백60개를 헤아린다. 그 속에 최대의 규모를 자
동아일보사와 일민미술관이 정부수립 50주년 기념행사로 주최하는 ‘4백년만의 귀향―일본속에 꽃피운 심수관가(家)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6일 오후 5시반 개막식 테이프를 끊은 뒤 14대 심수관의 안내로 40분 가량 전시 작품
정유재란이 끝나던 1598년 겨울 일본으로 끌려간 심수관가(家)의 선조 심당길(沈當吉)의 작품으로 하나만 남아 있다.
《심수관씨는 ‘4백년만의 귀향―심수관가(家) 도예전’ 개막식을 앞두고 6일 오후 3시 한일문화교류기금 후원
○…6일 오전 동아일보사 광화문 사옥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14대 심수관 기자회견에는 한국과 일본 기자 40여명이 참석
일본이 전쟁에 광분하던 시대를 살아야 했던 13대 심수관은 도공으로서 가장 힘든 세대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교
예로부터 무용(武勇)을 자랑하던 사쓰마 번은 조선 도공들에 의해 특산품 도예의 산지로 변한다. 무(武)에 실용이
지난 밤, 하늘에서 떠돌던 불덩어리가 마을 뒷산에 떨어졌다. 거기 가 보니 커다란 바위가 있고… 아직 온기가 남
예술이 그 풍토와 인간의 만남이라면 사쓰마 도예는 바로 일본이라는 환경과 조선 도공의 만남이었다. 심수관가의
주미 대사를 거쳐 2차 대전중 두 번이나 일본의 외무대신을 지낸 도고 시게노리(東鄕武德), 일본 독일 이탈리아의 3국
일본 도예를 하나의 산맥으로 볼 때 조선 도공들에 의해 우뚝 솟아오른 명산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심수관가의 나에
사쓰마야키(薩摩燒)는 흑과 백의 교향이다. 두가지 색으로 나누어진다. 지금도 화산재가 뿜어져 나오는 가고시마,
1603년 지금의 미야마(美山), 나에시로가와(苗代川)로 흘러들어온 후 4백여년, 심수관가가 지금까지 살고 있는
해안에 상륙한 심당길 일행 43명의 도공이 가마를 연 것은 다음해였다. 물통조차 나무로 짠 것을 사용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