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전 겸재로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작가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몽유금강전’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20세기를 불행하게 출발했다. 암울했던 시절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같은 우국
19세기에는 선비문인들 사이에 금강산을 유람한 뒤 서화첩을 제작하는 일이 잦아진 한편, 민간에서는 장식용 병풍
손암 정황(巽菴 鄭榥·1735∼?)은 겸재 정선의 장남 만교(萬僑)의 둘째 아들이다. 겸재가 회갑년 한 해 전에 본 손주였
『정선의 ‘금강산도’는 진경(眞景)산수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서울대 안휘준교수(한국미술사)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금강산 그림을 한자리에 전시하는 ‘몽유금강―그림으로 보는 금강산 300년전’이 7일 일민
유당 김하종(?堂 金夏鍾·1793∼?)이 금강산 경치를 그린 ‘풍악권(楓岳卷)’은 1991년 미국 소더비 경매에 등장했다가
“민족 미술사의 중요한 단면을 보면서 선조들의 창조적 예술정신에 흠뻑 취할 것 같았습니다.” 6일 개막한 ‘
‘몽유금강―그림으로 보는 금강산300년전’이 개막된 6일 오후 서울 동아일보 광화문사옥 일민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스물 두 살의 젊은 선비가 과거를 준비하다가 문득 산수유람을 떠나고 싶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친척 아저씨
‘몽유금강―그림으로 보는 금강산 300년전’에서는 그동안 각종 전시회에 출품되지 않았던 미공개작품 60여점
‘18세기 수묵화에서 20세기 비디오 설치작품까지.’ 금강산 그림을 통해 수 백년 세월 속에 변화해온 한국의 미술
“몸을 던지듯이 그렸습니다.” 세로 4m 폭1m가 넘는 대형 작품 ‘구룡폭’을 출품한 김호득(영남대교수)은 커
1788년 가을 정조는 어명을 내렸다. 김홍도와 김응환(金應煥)에게 금강산 일대의 풍광을 그려오도록 한 것이었
금강산 만이천봉이 연출하는 장관은 꿈의 공간으로 기억된다. 화가들은 ‘이 선경(仙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