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나는 중년을 거쳐 장년, 노년으로 가면서 자연스러운 노화와 더불어 몸의 변형과 보행의 장애를 겪을 것이다. 그런 내 모습에 주눅 들고 싶지 않다. 언젠가 보조기를 차야 한다면 내복의 어깨를 내려 오프숄더를 만든 것처럼 보조기에 반짝이라도 달아보리라. 빛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
그는 아내를 폭행하는 것과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별개라고 말하면서 아내를 너무 사랑하기에 매를 들었으므로 자신의 폭력은 정당하다는 헛소리를 했다. 여러 차례 가정폭력으로 구속된 이 사람이 다시 사회로 복귀했을 때, 그는 재범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선배…
불확실함과 불안함은 우리를 잡아먹는 커다란 괴물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아주 강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어요.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노력하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거든요. 불안함이라는 감정에 내 삶의 주도권을 넘겨버리지 않고, ‘불안…
누구나 속수무책으로 먹고 싸던 시절이 있고, 그 시절을 지켜준 사람이 있다. …(중략)… 집에서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은 자라나는 동안 자신을 먹인 사람을 생각해 보게 하는 일이다. …(중략)… 열심히 저녁을 만들어 한 상 차리고 마침내 식구들이 둘러앉았을 때, 엄마는 왜 자주 입맛을 …
몬스테라의 새잎은 마치 크루아상처럼 돌돌 말린 모양으로 나와 점점 부풀면서 펼쳐지는데, 그 모습이 오븐에서 빵을 구워내는 것 같아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귀엽다. 게다가 새잎은 원래 잎보다 훨씬 연한 초록빛을 띠고, 하나씩 나올 때마다 찢어진 구멍이 늘어나며 더욱 윤이 난다. 그래서 식…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 유독성 화학물질들. 그 물질들은 바람을 타고, 구름을 형성하고, 비를 내리며, 렘차카 특별 구역과 인근 도시들과 농작지와 식수원을 광범위하게 초토화해 버렸다. 당국이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결정한 건 수돗물을 받아 마셨다가 이름 모를 질병에 …
외로움인 줄 알고 보았더니 고독이었다/시인 줄 알고 보았더니 소설이었다/괴로움인 줄 알고 보았더니 즐거움이었다/먼 곳에서 온 손님인 줄 알고 보았더니/먼 곳에서 온 나였다 한 번 꿈에서 깼지만, 다시 깨어나기 위해 다시 꿈꾸고 있는 임선기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고양이 밥을 주려고 거실 문을 열고 나서는데, 테라스 위에 박새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새 가슴에 고양이 이빨 자국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바람이가 물어다 놓은 것이 분명했다. 비쩍 말라서 사냥도 못하게 생긴 캣대디에게 선물을 가져다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한편…
사랑에 대해 말하고, 또 사랑해야만 한다. 내가 사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랑을 통해 내 삶이 어떻게 동력을 얻을 수 있는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고민해야만 한다. (황인찬 산문 ‘사랑 때문에 죽을 수는 없어서’ 중)15명의 시인이 사랑에 대한 단상을 각각 시와 산문으…
아무도 안 보는 일기 앞에선, 정말 솔직해져야만 할 것 같다. 내가 일기를 쓰면 일기에 내가 쓰는 활자가 적히기 때문에, 아무도 안 보는 일기를 쓴다는 건 오로지 그 일을 위해서 하는 거기 때문에, 나는 받고 싶지 않은 고백을 받는 사람처럼 조마조마해지고, 결국 거짓말을 하게 된다.시…
새로운 땅에 도착한 사람들이 물었다/저 동물의 이름이 뭡니까?/간단한 차림의 원주민이 말했다/캥거루?/주머니가 있는 동물이었다/캥거루의 정체성은 다름 아닌 주머니에 있었다/가끔 주머니 없는 캥거루가 태어나기도 했다익숙함에서 벗어나 시적 자유를 추구하는 임지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환희] 병원 생활이 너무너무 지겨워서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너무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아내와 고양이들과 좁은 침대에서 낮잠 자고 싶다. 아내와 드라마 보면서 밥 먹고 싶다. 거실에 이승환 무적 전설 라이브 틀어 놓고 따라 부르고 싶다. 이사 가기 전에 피규어 잘…
한의사 선생님은 내게 카레 만드는 직업이 천직이라고 했다. 카레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주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매일같이 카레를 먹으라고 하셨을 정도다. 특히 버터 치킨 카레 같은 것은 완벽하다나. 사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아도 따로 식사를 차릴 새가 없…
그래서 저는 이 책을 통해 국악을 향해 수없이 반복되었던 ‘편견의 고리’를 ‘이야기의 고리’로 바꿔보려 합니다. ‘A는 B이다’ 같은 딱딱한 이론 말고 ‘심청은 왜 인당수에 목숨을 던져야만 했을까?’ ‘베토벤, 모차르트는 공감이 되는데 왜 산조, 시나위는 공감이 안 되는 걸까?’ ‘추…
편지를 써보기로 다시 결심한 건 코로나19의 한복판을 지나는 동안의 일이었습니다. 이전보다 서로 자주 만나지 못했고, 그 어느 때보다 고립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니까요. 물론 모바일 메신저로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지만 어떤 말은 시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