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아 돌아와 기어이 또 갔던 것은, 사람의 숨결로 그분의 산을 호흡한다는 설렘 때문이었다. 청춘을 다 바쳐 얻은 사랑의 떨림이었다. 오늘 내가 다시 암벽을 오른다고 해서 새로운 도전이라 부르지 말고 그저 떨림이라 해다오. 끝내 안고 가야 할 사랑이라고 해다오. ‘사랑의 떨림에 …
주변 풍경은 온갖 색채를 띠는데 명랑한 색만 없다. 날카로운 톱니 같은 산들이 그 위에 얹혀 있고, 굽이를 돌 때마다 새로이 형벌이 시작된다. 도로를 따라 이따금 자동차의 잔해가 처량하고, 저 멀리서 가축 떼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 나는 풀섶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 바스러지는 …
어쩌면, 하고 재화는 엎드려 얼굴을 묻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이어져 있는 걸지도 몰라. 성층권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냄새나는 연기들로부터 안전한 높은 하늘에 우리가 이어져 있는 어떤 망이나 막 같은 게 있는 걸지도. 텔레파시랄 것까진 없지만, 내가 널 오래 생각하면 너도…
나는 커다랗고 검고 때 이르게 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열일곱 살짜리들은 아무도 나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담하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고, 내 머리칼은 제멋대로 이상한 짓들을 하니까. 피터에 대해 아무와도 얘기할 수가 없다. 그건 날카로운 칼날이 달린 비밀이다, 두툼한 톱니 모양의 …
경찰한테 말하니까 자기들은 불 끄는 사람이 아니래. 아니, 하지 못하게는 할 수 있잖아. 근데 자기들 임무가 아니라면서 웃기만 해. 소방관들도 왔는데, 둘러만 보고 그냥 갔어. 불을 꺼달라고 해도, 추워서 불 쬔다는데 자기들이 어떻게 끄냐면서. …감옥살이가 힘든 게 아니라, 재판 과정…
우리는 가부장제가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것을 가지고 맞서 투쟁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유로운 여성이다. 우리를 향한 억압이 몸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이제 이 몸은 우리의 투쟁의 도구가 될 것이다. 프랑스에 본부를, 전 세계 20여 개국에 지부를 두고 활동 중인 페미니즘 단체 ‘페…
‘…거리 밖에는 거리가/도시 끝에는 도시의 알리바이가/도사리듯 모두 여기 와서/몸 섞는다.//여기서 나고 자란 친구는 말한다./마치 도깨비가 빛을 토하는 것 같군./진흙탕에 고인 물은 차라리 얼어붙기를 바라겠지.//구어체로 꾹꾹 눌러 써도/금세 잇새를 빠져나가는 억지 생소리들/한때는 …
그 호텔에는 삼십 년 동안 한 가수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치적인 전위였고 음악적인 전위였다. 하지만 그 호텔이 그를 완벽한 전위로 만들었다. 호텔에서 늙어가는 시인처럼 나도 짜디짠 물이라 물고기는 두 종류밖에는 살지 않는다는 거대한 호수를 지나가다가 말했다. 그렇게 살아야지.…
저는 내려놓았어요. 그게 바로 글쓰기예요. 온갖 무의미를 지나 밑으로 아주 낮게 내려가면, 세상이 자비롭고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죠. 작은 것들로 만들어진 더 큰 시야, 보푸라기가 갑자기 정확히 안구 크기인 거대한 안개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 들여다보면, 플러싱(뉴욕 한인…
‘카사블랑카’는 내가 본 최초의 영화는 아니지만, 픽션 작품이 불러일으킨 내 최초의 시간 경험이다. 영화는 단번에 내 기억으로 존재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이 영화 자체가 기억과 추억, 충실성과 망각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다. … 이 영화는 기억의 촉매제였고 오늘날에도 내게는 그렇…
중산층 집은 식모들 방을 따로 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1962년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 개량주택 평면도를 보면 식모 방은 크기가 제일 작으며 1∼2평 사이로 오늘날 고시원보다 약간 크다. 이 경우 위치가 현관문 바로 앞에 있지만 어떤 집은 제일 안쪽에 있고, 어느 곳이든 부…
규정에는 어시스턴트도 함께 슬픔을 표현해도 좋다고 되어 있었다.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공감의 표시로 조용히 눈물을 흘려도 되며, 오히려 그것을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나는 ‘사랑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속으로 셌다. 그리고 스물하나를 세다 말고 그만 목이 메…
들은 이야기가 들리는 이야기의 지친/격동이다. 거룩이 그렇게 온다. 중단이다. 인간이 그렇게 서있다. 거룩이 은총과 자비는/아니지. 두려움의 방편, 이야기 같은 거다./들은 이야기가 들은 이야기의 밤이고 첫 말씀이고/군마(軍馬)들이고 다시 밤이다, 임신이 재앙 아니기/위하여 세에라자드…
그리고 지금, 저 방안에서, 어린 요한네스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어린 요한네스, 그의 아들, 이제 그의 어린 아들은 이 험한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 겪는 가장 힘든 싸움 중 하나일 것이다, 자신의 근원인 어머니의 몸속에서 나와 저 밖의 험한 …
Mnet은 보건복지부의 청탁을 받고 쇼미더머니를 만들었지//우리가 미치는 것을 막아 보려고/Mnet은 국가정보원의 청탁을 받고 고등래퍼를 만들었지/화염병 던지는 것을 막아 보려고(중략)힙합은 필요 없어/방탄소년단도 꺼져 버려/더 나쁜 약을 줘/진짜 약을 줘/내 청춘 박멸한다.(‘힙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