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서 멀어진 나, 계속해서 꿈을 추구하지만 어느덧 경계가 희미해진 세계에서 헤매는 나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교차하는 시간이 서울과 드레스덴을 넘나들며 그려진다. 다양한 예술 작품과 복원된 도시, 예술가의 방이라는 연계 고리를 통해 삶과 예술, 과거와 현재, 생과 사라는 광망한…
아직 도착하지 않아/ 외출도 못 하고 있어/…(중략)…/ 혈압약처럼 먹어야/ 또 하루가 지나가는/ 이 익숙한 순서/ 빼먹을 생각은 없어/ 정량을 초과하지 않으면/ 당신이 없는 슬픔도/ 견뎌야겠지/ 늦은 날을 기다리느라/아무 일도 못 했어/…(중략)…/그러니 가능하다면/아침 일찍 도착해…
“이 도시에는 침묵만 흐른다. 고요와 굶주림. 방금 아우레아 거리를 산책했고, 아우구스타 거리를 걸어다녔지만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말없이 지나가고, 서로 아는 사이인데도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가장 붐비는 상업 중심지인 델라레스라스에서도 사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대단…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은 그렇게 동성애자에게 찍힌 낙인을 지우고, ‘우리 안의 그들’이라는 이상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곤잘레스토레스의 작업이 단순히 작가와 그가 사랑했던 연인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감상적 표현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낙인찍고,…
“실제로 휴고상이 제대로 작동되었다면 이 상은 류츠신이 아닌 사라 모넷의 ‘고블린 엠퍼러’가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 극우주의자가 이끄는 새드 퍼피즈라는 팬덤이, 여성 작가들이 휴고상을 오염시키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표를 조직화 했던 거죠. … 이들은 여자 작가에게 휴고상을 넘겨…
친구 여러분, 인류는 색에 대한 지각을 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검은색과 흰색이 아직 우리 곁에 있는 한, 모든 것을 잃은 건 아닐 겁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이렇게 물으시겠죠. “그렇다고는 하지만, 검은색과 흰색도 색인가요?” 글쎄요. 우리 조상들에게 ‘무색’은 수도사들…
소냐 언니와 산드라, 나는 오빠를 상대로 증언을 했고 우리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 오빠도 알고, 우리도 알아. 오빠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 목숨을 빼앗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런 확실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오빠를 사랑해. 어린 시…
…기를 쓰고 젖을 빨다가 빤히 쳐다보는/아기의 물기 어린 눈빛이라든지//붙잡지 못하고 보내줬던 기억은/누구에게나 있었다//사람에겐 정을 내지 않는 그는/모임 때마다 뼈다귀를 담았는데//그날은 미안했던지/쪼르르 쫓아오는 강아지 눈망울이 하도 예뻐 머루라 부른다고/묻지도 않은 말을…
모던한 패션에, 새빨간 립스틱. 꽤 시선을 끄는 스타일이지만 사실 저는 내향적이라 눈에 띄는 차림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다만, 굳이 이 나이가 되어서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략) 백발이 되어 새로운 멋을 알게 되다니. 사랑스러운…
젊은이는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보았다. 같은 꿈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떠 있던 얼마 남지 않은 현실에서, 그 꿈이 실현되었음을 알았다.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당신…
나는 다른 면에서도 남달랐다. 무언가에 흥분할 때마다 그 기분이 마음의 경계를 넘어 온몸에 벅차올랐다. 손가락 끝이 마치 불붙은 원통형 폭죽이라도 된 것처럼 손을 펄럭이곤 했다. 사촌들은 그것을 ‘버드 파워’라고 불렀고, 나중에는 행운의 부적처럼 대했다. 타인의 감정과 신…
샤를뤼스 씨가 커다란 뒝벌처럼 윙윙거리며 문을 지나가는 순간, 이번에는 진짜 뒝벌 한 마리가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난초꽃이 그토록 오래 기다려 왔으며, 또 그렇게 희귀한 꽃가루를, 그것 없이는 난초꽃이 숫처녀로 남아 있을 그런 꽃가루를 가져온 벌이 아니라고 누가 알겠는가? …
비밀 없는 마음이 간신히 비밀 하나를 얻어 천천히 죽어갈 때. 물새와 그림자 사이에서, 파도와 수평선 너머로. 저녁노을은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우며 색색의 영혼을 우리 눈앞으로 데려온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서 액체가 흘러내린다. 우리는 우리로부터 달아나면서 가까워지고 있다.…
고독은 크레바스 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아. 다쳐서 고통스럽고 아픈데 크레바스에서 다시 올라가려면 도움이 필요하지만 어디에도 너를 보거나 네가 외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하지만 너를 에워싼 얼음은 깨지기도 쉽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죽음만이 진정한 평화를 …
고양이들과 지낸 기간이 길어지면서 엄마는 수시로 녀석들에게 말을 건넨다. … 고양이들의 울음소리와 엄마의 말소리가 오가는 장면을 지켜보면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는 것만 같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서로 별다른 대화가 없고, 나도 결혼해 독립하면서 집은 더 적막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