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은 예기치 못한 질량이며 은닉의 시간에 급습하는 뮤즈다. 화살들이 수없이 날아다니지만 화살에 맞은 자는 맞은 줄도 모른다. … 불타는 상상력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은 불경하며 동시에 신성하다. 1975년 첫 앨범을 발표한 ‘펑크 록의 대모’이면서 여러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
나무는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다/나무는 흐른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니/바닥에서 별이 돋아났다// 나는 너무 함부로 아름답다는 말을 해왔다//… 그래서 당신/나는, (시 ‘부춘’) 남도 서정의 맥을 잇고 있다는 평을 받아 온 저자가 자신의 뿌리와 고향, 사라진 것에 대한…
풀이 아니면 내가 뭣을 벗을 삼고 이 햇볕에 나와 앉았겠나. 뭣이든지 키우기 위해 무성하게 잘 크는 풀을 뽑으니 내가 맘은 안 편하다. 뽑아 놓은 풀이 햇볕에 말르는 것을 보면 나도 맘은 안 좋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할 수 없이 또 짐을 매고 풀을 뽑으며 죄를 짓는다. …
코델리아는 왼손으로 총구를 감싸고 오른손으로 총을 쥐었다. 심장이 너무 거칠게 뛰어서 거센 망치질이 틀림없이 그녀를 곤경에 빠뜨릴 것만 같았다. 정문에서 들려온 가느다란 끽소리는 실제로 들었다기보다는 상상에 가까웠지만, 오두막을 돌아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
청년기는 지나갔지만 그 자리에 성숙의 흔적은 없었다. 슬픔과 탈진이 증오와 광기를 숨기는 경향을 ‘성숙’이라고 하지 않는 한은 그랬다. 많아지는 선택지와 두 갈래 길을 늘 마주한 듯한 느낌은 어느새 긴 실종 선박 목록을 보며 부둣가에 서 있는 것 같은 황량한 느낌으로 대체되었다…
그게 바로 악마의 속임수야. 악마는 창조해내지 못해. 오직 흉내 내고 베낄 뿐이야. 악마는 진부하게 하던 걸 계속하지. 그리고 말해. ‘원래 그러는 거예요’, ‘예전부터 이랬어요’, ‘관행이에요’. 이게 유일한 변명이란다. 하지만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은 선한 것, 그것은 선하…
아니, 내가 의미한 것은 부서지는 파도의 아름다운 폭력이었다. 그것은 불변의 것이었다. 작은 파도와 더 약한 파도 속에서 그것은 온화하고, 자비로우며, 위협적이지 않고, 통제되어 있다. 우리를 밀어붙여 놀도록 하는 것은 거대한 대양의 엔진이었다. 파도가 강력해지면 분위기가 바뀐…
나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복수를 꿈꾸는 대신 허겁지겁 빵 봉지를 뜯었다. 그건 가깝고 값싸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위로였다.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실제로 그런 시기를 지날 때마다 몸무게는 꾸준히 늘어났다. 입에 꾸역꾸역 쑤셔 넣고 씹으면서 나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에 대…
그의 사랑은 눈송이 같을 거라고 해원은 생각했다. 하나둘 흩날려 떨어질 땐 아무런 무게도 부담도 느껴지지 않다가, 어느 순간 마을을 덮고 지붕을 무너뜨리듯 빠져나오기 힘든 부피로 다가올 것만 같다고. 그만두려면 지금 그래야 한다 싶었지만 그의 외로워 보이는 눈빛에서 피할 수가 …
숟가락에 붙어 있는 것은 밥풀도 국물도 아니고 내 것이 아닌 피였다. 숟가락을 어디에 숨길까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를 숨기기에 가장 적당한 곳은 역시 땅속이었다. 나는 숟가락을 다시 파묻기 위해 공터가 나올 때까지 걸었다. 도라지꽃이 우거지고 백일홍 화단이 있고 자…
영우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그건 오직 한 사람이 날 거부한 것이었지만 나는 세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건 잘 구분이 되지 않을까. 그 마음이 나를 괴물로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애써 구분하지 않았을까.…하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너한테 …
많은 대학 캠퍼스에서, ‘호호호’는 산타클로스의 전형적인 웃음소리가 아니라, ‘호호호찌민, 민족해방전선은 승리하리라!’라는 인기 구호의 도입부였습니다. 그 당시 나는 학생들의 꾸밈없는 정치적 열정을 질투했습니다. 나는 베트남공화국에서 온 선량한 시민 역할을 하기 위해 자신의 열…
개구리 씨는 혹시나 운 좋게 다음 생일을 맞이할 수 있다면 엘비스 프레슬리 무대 의상을 만들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애써 명랑한 목소리로 물론이라고, 별 장식이 달린 아주 근사한 의상을 선물해 주겠다고 했다. 자기는 목소리가 워낙 걸걸해서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엘비…
“왜 안 죽어? 응? 늙었는데 왜 안 죽어! 그렇게 오래 살면 거북이지 그게 사람이야? 요즘 툭하면 100살이야. 늙으면 죽는 게 당연한데 대체 왜들 안 죽는 거야! 온갖 잡다한 병에 걸려 골골대면서도 살아 있으니 마냥 기분 좋아? 기분 막 째져?” 국민연금공단 이사가 70세인…
“조국으로부터 벗어나고, 신부들로부터도 벗어나고, 돈으로부터도 벗어나고, 탈탈 먼지를 털었죠. 세월이 흐를수록 난 먼지를 털어냅니다. 그리고 가벼워집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난 자유로워지고, 사람이 돼갑니다.” 조르바의 눈빛이 빛나더니, 그의 큰 입이 행복에 젖어 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