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시간을 들여 자신만의 집을 짓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땅 위에든 마음속에든. 사람들이 마음속에 진짜 원하는 집을 그릴 땐 사실 자신이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살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그리고 마음…
나무는 심긴 그 순간부터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선택할 수 없는 이 자리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남고 푸르러야만 한다. 사람은 편하게 살고 싶고, 쉽게 살기를 바라지만, 강한 불볕과 모진 바람으로 인생을 단련시킨 자에게 고귀한 열매를 맺게 하는 건 하늘의 방식인가 …
버려질 위기에 처한 물건들 또한 한 번 더 기회를 얻고 중고시장에 서 있다. 재고되기 위해. 거기서 마지막으로 새로워질 기회를 얻는다. 모든 미물은 새로워지고 싶다. 나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소유가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온 바로 그 물건일 수 있다. 꼭 팔아야 하는 사정과 마침 그걸 찾…
그 작은 화원의 주인인 청년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꽃은 상황이 안온할 적에 피는 게 아니라 도리어 시달리게 되는 경우에 스스로 살고자 하는 몸부림 안에서 피게 되는 거라고. 창가에 두어 기온과 풍광의 부침을 겪는 난(蘭)과 꽃나무가 오히려 자주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
그들이 뿌리내린 도시의 땅은 위태로웠다. … 흙 한 줌 없이 아슬아슬한 곳에 기대어 살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견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격려와 위로가 되었다. 어느 계단 사이에 난 꽃을 보려고 길을 돌아가기도 하고, 보고 싶은 친구의 안부를 묻듯 건물과 건물 사이 구석구석 …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엉켜 있을 땐 언제나 부엌에 들어와 섭니다. 그리고 숫돌을 꺼내 물에 담그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물에 잠긴 숫돌에서 솟아오르는 기포를 보면서 오늘은 실수 없이 칼을 잘 갈자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준비한 도구를 들고 요리할 때는 기합부터 확실히 …
이 친구는 속명이 아라크니오데스이다. ‘거미줄 같은’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땅속에서 줄기 뿌리가 거미줄처럼 뻗어나가 한 잎씩 땅 위로 낸 형상이다. 촘촘하게 얽혀 있는 그물 같은 뿌리에서 나온 잎들이 지표면을 가득 덮고 있다. 우리가 보는 모습이 완전한 한 개체인 듯하지만, 알고 …
기약할 수 없는 돌봄의 시간. 그 시작과 끝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보호자가 되어서 돌봄 생활을 해나가는 것은 삶의 중요한 요소를 희생하는 선택과 맞닿기도 한다. 돌봄 가운데 선택과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랑도 분명 그 가운데에 있다.…
선생님은 숨을 오래 참는 비법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번민에 휩싸일수록 뇌에서 산소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숨을 오래 참으려면 생각을 멈추고 몸에 힘을 빼야 한다. 그러려면 긴장된 상태로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 있는 몸의 부위를 스스로 인지해야 한다. 자기 몸…
나는 도서관 마법이 서가 위에 놓인 것도 아니요 책 속에 깃든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진정한 마법은 도서관이 상징하는 가치에서, 그리고 그 가치에 숨을 불어넣는 지역공동체에서 생겨났다. 사람들이 없다면―고된 노동을 마다 않는 사람들과 그들에게서 비롯된 참된 애정 없이는―도서관은 그저 …
독립서점은 단순히 손님이 책만 고르고 나오는 곳이 아니다. 독립서점에서 진행하는 그림책 수업을 통해 작은 소녀에게 그림 작가의 꿈을 꾸게 할 수도 있고, 북토크를 통해 퇴근 후 지친 직장인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다. 글쓰기 모임을 통해 소설가를 꿈꾸었던 아이 엄마의 잊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의지하면서 따뜻하게. 성별과 나이를 떠나 서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의지하고 살면 가족 아닐까? 가족이 꼭 함께 영원해야 한다는 건 어쩌면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땐 가족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를 염려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늙어감이 불안하지는 않다. 오히려 복잡하지 않은 관계가 한적하고 안정감 있는 중년의 삶을 선사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집안일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질러지면 치우고, 쌓이면 버리고, 쓸고 닦아도 끝이 없고, 표시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별도리가 없다. 힘들다고 내팽개치면 집 꼴이 엉망…
그가 거기서 죽기로 한 건 뜻밖의 선택이었다. … 몇 분 뒤 그가 화장실에 갔다가 광대 복장으로 돌아왔다. 홀치기염색을 한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알록달록한 광대 가발을 쓰고, 빨간 코도 붙였다. 빨간 코는 붙일지 말지 망설였다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냥 붙이기…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이 위기를 멈추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건 거짓말이다. ‘충분히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하고 있긴 하다는 뜻인데, 불편한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듣기 좋게 고쳐 말하면, 우리는 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