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델을 하게 되고 워킹을 배운 것이 칠십 세다. 돈 주고 배우겠다는데도 아카데미 대표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걸을 수 있겠어요? 어려울 텐데 하고 말하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사람들보다 내가 잘했다는 걸 알리고 싶다. 워킹을 배우게 될 줄 미리 안 건 아니지만 …
다르게 사는 여자도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어. 내가 봤던 여자 어른은 대부분 누구의 아내이고 며느리이고 엄마였으니까. 나도 그게 여자의 역할이자 의무인 줄 알았지. 그렇게 살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네.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를 꼽…
집 안에 있는 우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산은 집 밖에서 비를 만나야만 제 존재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 어떤 마음도 그렇다. 꼭꼭 숨기고 감추어서는 소용없는 마음이 있다. 가슴속에서 꺼내어 활짝 폈을 때, 누군가의 우중충한 마음 위에 씌워줬을 때라야 숨 쉬는 마음이 있다. 우산이…
어느 것이나 살펴보면 스러지고 썩어지는 것이 원칙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주는 적멸하고 인류는 사멸합니다. 그러나 이 멸망해 가는 우주와 인류 간에도 영구불멸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신념이요 지성이요 진리요 사랑이외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멸망해서 자취를 찾을 수 없으나 그대…
상실을 겪거나 배반당하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 수치스러울 때면 나는 책상으로 가서 읽거나 쓰면서 마음을 달랠 것이다. 삶을 바꾸고 싶을 때, 다른 삶을 간절히 원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언젠가, 한 시간쯤 뒤에 혹은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반드시 기분이 다시 좋아질 것이…
달리다 보면 매번 누군가가 나를 추월하곤 한다. 또 조금만 힘을 내면 금방 따라잡을 것 같은 사람의 뒷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 때 무리해서 페이스를 올렸다가 방전되어, 원래는 달려야 할 거리를 터덜터덜 걸었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사실 누군가로부터 추월당한 적도 없으며, 내…
도서관에 오시는 다양한 분들을 보면 모두에게 열려 있는 도서관의 꿈은 어느 정도 실현된 것 같다. 20대 취준생도, 70대 정년퇴직하신 어르신도 도서관으로 온다. 부자도, 노숙자도 도서관에 온다. 세대 갈등과 양극화 심화로 서로 멀어져만 가는 이 시대에 다양한 사람이 모일 수 있는 흔…
나는 인간이 저절로 성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사고가 깊다’를 뜻하는 것이 아니며, ‘경험이 많은 것’이 반드시 ‘사고의 유연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봄이 와서 꽃이 저절로 피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
나는 인간이 책을 손에 쥘 때 느끼는 순수한 마음의 움직임이 좋다. 크게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길 바라며 눈앞에 있는 책을 손에 쥔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설령 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서점을 만들고 싶다. ‘…
고래는 슬픈 역사 속에서 배태된 문화적 아이콘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나은 세상을 향한 염원이 체화된 신화적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라는 정호승의 시처럼 고래는 청춘들이 누리지 못한 생명력과 리비도의 모체가 되었…
나는 2014년의 여자와 1958년의 여자아이를 하나의 ‘나’로 녹여내야만 하는 걸까? 아니, 내게, 가장 적합한 게 아니라 가장 대담하다고 느껴지는 방식은 이 둘을 ‘나’와 ‘그녀’라는 대명사로 분리하는 것이다. 있었던 사실과 행동들을 가능한 한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가장…
서늘한 골짜기에는 왜 그리도 포도밭이 많을까? 강물의 반사 효과로 포도 덩굴에 햇빛이 두 배로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아내고도 크나큰 기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해변에서는 비가 소금기를 머금은 까닭에 무지개가 아주 조금 작아 보인다는 사실을 언젠가 우리는 알아차리…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한다. 충분히 잔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쬔다. 하루에 최소한 30분 이상은 산책을 한다. 햇빛에는 자연적인 행복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있다. 세로토닌은 밤이 되면 멜라토닌으로 바뀌어서 꿀잠을 자게 만든다. 그…
제가 어린이 모르게 어린이를 기다려 주듯이, 어린이들이 저 모르게 저를 기다려줄 때도 많을 것입니다. 주변 어린이들을 떠올려 보세요. 어른들이 바쁜 일을 끝내기를, 지난번 그 약속을 지키기를, 자신을 바라보고 귀 기울여 주기를, 말로는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다리고…
죽은 자들의 힘이란 그들이 변함없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죽은 자들은 존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들로만 이루어진 에너지의 차원이 있는 것일까? 그들은 물론 땅속에 묻혀 잠들어 있고 부서져 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이 꾸는 꿈일지도 모른다. 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