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전하지 못하는 것을 노래는 전한다. 얼핏 관습적으로 보이는 이야기가 음악의 힘을 얻어 감동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6일 개막한 뮤지컬 ‘카르멘’은 그와 반대로 허술한 음악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카르멘’의 원작소설은 1845년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안무와 의상, 무대, 음악 모두 우리의 것이었으나 이 하나의 공연은 더없이 현대적이었다. 총연출을 맡은 디자이너 정구호의 손길을 입은 국립무용단의 ‘묵향’(6∼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우리의 전통을 얼마나 세련되게 그려낼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 무대였다. ‘묵향’은 무용…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최근 방영분 도입부. 하숙집 주인 부부의 늦둥이 아기를 남자 하숙생들이 번갈아 안고 어른다. 줄곧 얌전하던 아기가 문득 울음보를 터뜨린다. 포대기를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학생은 하숙생 중 유일하게 꽃미남이 아닌 ‘삼천포’다. 인격을 형성하는 건…
밀수꾼 집시들이 기거하는 어두운 산속은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 캠핑카와 텐트로 채워졌고, 춤추고 노는 허름한 주막은 도시적인 바로 바뀌었다. 고양문화재단이 제작한 오페라 ‘카르멘’(11월 28일∼12월 1일, 고양아람누리)은 현대적인 무대와 연출로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안겨줬다. …
“재미있게 보기는 했는데 이해가 안 돼서…. 설명을 좀 들어봐야겠어.” 지난달 27일 막을 올린 국립극단의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을 관람한 뒤 받은 휴대전화 메시지다. 잠깐 망설이다가 회신을 보냈다. “난 재미없었어. 그런데 2시간 넘게 앉아서 지켜보고 다시 추가 설명을 들어…
제목과 내용을 공유하는 영화와 공연을 맞대놓고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26일 막을 올린 뮤지컬 ‘맘마미아!’는 그리스 산토리니 앞바다의 반짝이며 부서지는 물보라를 보여줄 수 없다. 푸른색 배경과 조명의 조합으로 최선의 분위기를 전달할 뿐이다. 열창하는 여주인공의 촉촉한 눈망울을 클…
연극적 과장을 선호하지 않는다. 막이 열리고 10분 정도 지날 때까지 ‘잘못 들어와 앉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던져지는 이야기를 한 입 두 입 넘길수록 뒷맛이 부담 없이 야릇하다. 1시간 40분 뒤 입안에 남은 것은 뜻밖의 소박한 맛집을 찾아낸 청량감이었다. 시작은 어색하기 짝이 …
일본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우리 클래식 공연계에서 기획으로 승부를 걸어 히트 상품이 된 젊은 클래식 연주자 그룹 ‘앙상블 디토’. 하지만 디토를 벗어나면 생각나는 이름이 없다. 공연장과 기획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클래식을 상품으로 만들기에 게을리한 탓이다. 23일 서울 예…
솔오페라단의 ‘나부코’(15∼17일·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는 3월 국립오페라단의 ‘팔스타프’와 더불어 올해 베르디 탄생 2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이탈리아 모데나에 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시립극장과의 협력으로 기획한 이 프로덕션은 모든 오페라의 …
“어때요? 걱정할 만하죠?” 제작자인 듯했다. 공연이 끝난 뒤 출구 옆에 서있던 그가 티켓판매 대행사 관계자로 보이는 관객 두 명에게 다가가 물었다. 엿들으려 한 것은 아닌데 귀에 묘하게 걸렸다.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별로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 15…
7월 초 토요일 오후였다. 첫 뮤지컬 취재를 마치고 한동안 로비 구석에 서서 극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내용은 안이했고 음악은 버성겼다. 하지만 관객 절반이 기립박수로 열광했다. 내 시각과 청각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걸까. 난간에 기대 사람들을 보며 한참 동안 생각했다. …
11, 12일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풍성한 만찬을 차려냈다. 래틀 자신의 표현대로 다양한 맛이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낸 프로그램이었다. 혼연일체가 된 현이 빚어내는 유려한 앙상블, 흠잡을 데 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금관과 목관의 소리는 베를린필이 왜…
“응. 재미있어.” “이렇게 재미없는 건 처음 봤다.” 9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세 자매’의 인터미션 중 관객 반응이다. 첫 번째는 아버지를 따라 화장실로 가던 10대 초반 남자아이의 말. 다음은 애인을 이끌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던 긴 생머리 여…
“×○○. ×발 △ 같은 개○○.” “미친 병신 개○○.” 걸쭉하다. 국립극단이 ‘청소년 연극’이라는 수식을 붙인 연극 ‘노란 달’ 속 대사다. 욕에 어울리는 폭력과 살인 사건이 잇달아 벌어진다. 14세 이상 관람가지만 10대 자녀와 함께 본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는 편이 좋다.…
터미널은 지극히 사적(私的)인 공공의 공간이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저마다의 강렬한 기억이 24시간 동시다발로 곳곳에 새겨져 쌓인다. 이별하고, 재회하고, 떠나고, 돌아오고, 끝내고, 시작한다. ‘해바라기’(1970년)부터 ‘러브 액츄얼리’(2003년)까지, 고갱이 장면이 터미널인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