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오르고 2분쯤 뒤, 관객은 안구 홍채의 기능을 확인하게 된다. 7일 개막한 연극 ‘블랙코메디’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공연 전 무대에 오른 주연배우 설성민(브린즈리 밀러 역)의 설명대로 “불이 들어온 상황에서는 조명을 끄고, 정전이 되면 조명을 켠다.” 칠흑 속…
일찌감치 자리에 앉는 편이 좋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관객이 방심하고 있는 새 슬그머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1부 시작 직전과 인터미션 중반쯤 어둑어둑한 무대 위로 후줄근한 평상복 차림의 두 남자가 올라와 분주히 소품을 늘어놓는다. 배치가 대강 마무리되나 싶을 즈음 또 한 남자가 들어…
중학교 2학년 때쯤 중간고사 국어 객관식 문제. 다음 중 연극의 3요소는? 정답은 ‘희곡 배우 관객’. 선생님은 다른 보기에 이 셋 중 하나를 빼고 4번째 요소인 ‘무대’를 넣어 학생들을 유혹했다. 희곡과 배우는 필수. 헷갈리는 건 관객과 무대였다. 결여된 상태를 차례로 상상해보면…
“그런데 우리가 왜 싸우기 시작한 거였지?” 일본 만화 ‘원피스’에서 무인도에 갇힌 채 100년 동안 매일 싸워 온 두 거인이 잠시 다툼을 멈추고 주저앉아 했던 말. 작은 일을 계기로 대사건이 벌어지는 경우가 현실세계에도 종종 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 기사를 출고하고 나서 듣는 데스크의 다양한 꾸지람 중 무엇보다 가슴 아픈 말. 이유가 뭐든 의미에 대한 부연이 필요하다면 실패한 글이다. 글은 그저 글로 끝이어야 한다. “그 단어는 이런 뜻으로 쓴 것”이라는 중언부언은 수치스러운 변명일 뿐이다. …
집 앞 길 건너 비디오 대여점. 고등학교 때 어머니 몰래 빌려 본 수많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중 ‘캣 피플’(1982년)이란 게 있었다.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초점 흐린 눈빛으로 무언가를 응시하는 나스타샤 킨스키의 흠뻑 젖은 얼굴이 커버 사진에 가득했다. 사람과 육체관계를 맺으면 표범…
집 앞 길 건너 비디오 대여점. 고등학교 때 어머니 몰래 빌려 본 수많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중 ‘캣 피플’(1982년)이란 게 있었다.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초점 흐린 눈빛으로 무언가를 응시하는 나스타샤 킨스키의 흠뻑 젖은 얼굴이 커버 사진에 가득했다. 사람과 육체관계를 맺으면 표범…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분홍병사’의 음악감독 정재일(31). 10대 때부터 윤상 유희열 김동률 같은 쟁쟁한 뮤지션들과 작업하며 ‘천재소년’이라 불린 인물이다. 한상원 이적과 함께 밴드 긱스를 만들었을 때 그의 나이 겨우 17세였다. 1990년대 대중음악계…
에우리피데스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막장 드라마의 귀재였다. 고향 아테네를 도망치듯 떠나 기원전 406년경 마케도니아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중 막내. 희곡 90여 편을 썼지만 생전에는 4편만이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대표작 ‘메데이아’에서 그는 신화 …
“더 빠른 길, 더 나은 길만 고민하던 저는 별로인 것 같아요. 할아버지처럼 힘들게 부딪힌 길에 추억이 있고, 돌고 돌아갔던 길들 속에 사연이 있을 것 같고…. 빠르고 좋은 길은 내비게이션 안에만 있겠죠.” 11일 막을 올린 연극 ‘나와 할아버지’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 역의 배…
●‘끈적하고 야한’ 십센치, 수천 명팬 마음 홀리다●26곡 소화, 울고 웃었던 160분●“어쩔 수 없어. 오늘 아니면 우리가 언제 또 이러겠나.”이 콘서트는 과연 누구를 위한 공연인가?인디밴드 십센치(10cm. 윤철종 권정열)가 오늘 하루 날을 제대로 잡은 듯하다. “즐기겠다”던 두 …
●발라드-군가-셔플댄스-클럽 뮤직…장르 초월●지드래곤으로 깜짝 변신 ‘판타스틱 베이비’●오는 4월 새 앨범 발매 및 소규모 공연 예정“제 걱정 많았죠? 오늘 여러분들께 고소당하지 않을 만큼 확실하게 불러드릴게요.”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처럼 박효신(32)의 음성이 관객의 마음을 감동으로…
“눈 감으라. 외면하라. 그대 저 들끓는 검은 늪, 심연을 들여다보지 마라. 들여다보고 들여다보면 마침내 심연도 깨어 일어나, 그대의 영혼을 마주 들여다보리니, 그대 다시 순결할 수 없고 다시는 평온을 맛볼 수 없으리라.” 무대 위를 가로지르는 공중의 철제 다리 위에서 죽음의 사신 같…
최근 대학로에서 맹활약하는 극작가 김은성(35)의 장점은 한국사회 현실이나 한반도 역사의 굴곡진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 해학을 곁들여 사실적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그는 대가들의 기존 작품의 배경을 한국적 현실로 바꾸는 데 비상한 재주를 발휘해 왔는데 이번 작품 ‘로풍찬 유랑극…
11∼14일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열린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공연 중 필자는 13일 공연을 골랐다. 다른 사정도 있었지만, 이날 수잔나 역을 맡은 소프라노가 다름 아닌 임선혜라는 사실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음반 녹음과 공연 양쪽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