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동은 지금의 서울 종로구 청운동 창의문 아래 북악산 기슭을 일컫던 동네 이름이다. 한자로는 ‘붉은 노을 속에
창의문은 한양 도성 4소문(小門) 중 서북문에 해당하는 성문이다. 이 문을 나서면 현재 종로구 신영동 평창동 일대
백운동은 인왕산 자락이 북악산 자락과 마주치는 인왕산 동편 북쪽 끝자락의 지명이다. 종로구 청운동 8 일대로 자하
풍계유택(楓溪遺宅)은 ‘청풍계(靑楓溪)에 남아있는 외가댁’이란 의미다. 겸재의 외조부 박자진(朴自振·1625∼169
조선 영조 22년(1746) 겸재가 71세 때 살던 자택의 모습이다. 현재 종로구 옥인동 20에 해당하는 곳. 당시 이곳의
겸재가 양천 현령으로 부임한 것은 영조 16년(1740) 초가을이다. 이 때 겸재는 동심지우(同心之友)인 사천 이병연과 석
사문탈사(寺門脫蓑)는 ‘절 문에서 도롱이를 벗다’라는 뜻이다. 도롱이는 물기가 잘 스며들지 않는 띠풀을 엮어 어
‘서빙고에서 도성, 즉 서울을 바라보다’라는 제목의 진경산수화다. 서빙고는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199 서빙
지금 동작대교가 놓여 있는 동작나루 일대를 서울 쪽에서 바라본 그림이다. 관악산 우면산이 먼 산으로 처리되고, 현재
빙천부신은 ‘얼음벼루에서 나무를 지다’는 뜻이다. 벼루라는 말은 낭떠러지 아래가 강이나 바다인 위태로운 벼랑
설평기려(雪坪騎驢)는 ‘눈 쌓인 벌판을 나귀 타고 가다’라는 뜻이다. 겸재가 영조 16년(1740) 초가을 양천 현령
귀래정은 조선시대 형조판서를 지낸 죽소 김광욱((竹所 金光煜·1580∼1656)이 행주 덕양산 기슭 행호강(현 창릉천)변
낙건정은 행주대교가 지나는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덕양산 끝자락 절벽 위에 있던 정자다. 이조 호조 예조 병
행호관어는 ‘행호(杏湖)에서 고기 잡는 것을 살펴본다’는 뜻이다. 한강물은 용산에서 서북쪽으로 꺾여 양천 앞
서울 마포구 합정동 145 외국인묘지 부근 절두산 일대의 옛 모습이다. 지금은 절두산(切頭山)이라 부르지만 그 시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