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 영등포구 양화동 양화선착장 일대의 260년 전 모습이다. 이 곳에는 선유봉(仙遊峯)이라는 매혹적인 산이
이수정은 서울 강서구 염창동 도당산(都堂山·지금의 증산) 상봉에 있던 정자다. ‘양천군읍지’에 이런 기록이 있다.
소요정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 탑산 남쪽 기슭에 있던 정자인데 고종 28년(1891)에 편찬된 ‘양천현읍지’에 이미
현재 서울 강서구 개화동 332의 12에 있는 개화산 약사사의 겸재 당시 모습이다. 그때는 주룡산(駐龍山) 개화사(開花寺
겸재가 영조 16년(1740) 초가을 양천현령으로 부임할 당시 양천현 관아의 모습이다. 양천읍지에 ‘동헌 종해헌(
소악후월(小岳候月)은 소악루에서 달뜨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겸재가 이런 제목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 데는 그
소악루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성산 동쪽 기슭에 있던 누각이다. 전라도 동복(同福) 현감을 지낸 소와 이유(笑窩 李
종해헌(宗海軒)은 양천현(陽川縣·지금의 강서구) 관아의 동헌(東軒·지방 수령의 집무소) 이름이다. 그러니 ‘종해청
안현은 안산(鞍山) 또는 모악산(母岳山)이라 부르는 서울의 서쪽 산이다. 봉원사(奉元寺)와 연세대 및 이화여대를 품
목멱산은 서울 남산의 다른 이름이다. 남쪽 산을 뜻하는 순 우리말 ‘마뫼’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라 한다. ‘마뫼
상암 월드컵경기장과 월드컵공원 등이 들어선 난지도(蘭芝島) 일대의 262년 전 모습이다. 원래 이곳은 모래내와 홍
공암층탑(孔巖層塔·공암의 층진탑) 공암(孔巖)은 양천(陽川)의 옛 이름이다. 신라 경덕왕 16년(757) 주군현(州郡
공암(孔巖)은 양천(陽川)의 옛 이름이다. 신라 경덕왕 16년(757) 주군현(州郡縣)의 이름을 한자식으로 고칠 때 이
양화진(楊花津)은 서울 마포구 합정(合井)동 378의 30에 있던 나루다. 한양(서울)에서 김포 부평 인천 강화 등 당시
압구정은 강남구 압구정동 산 310에 있던 정자다. 남쪽에서 우면산 자락이 밀고 올라와 북쪽의 남산 자락인 응봉(鷹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