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우정총국(郵征總局) 건물이 완공돼 축하 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우정총국은 해외를 시찰하고 돌아온 홍
19세기 후반 조선에서 ‘개화’는 이미 전반적인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잡는다. 당시 지식인들 사이의 쟁점은 조선
《1893년 봄, 조선의 뛰어난 문장가요 지조 있는 관리로 명망이 높던 영재 이건창(寧齋 李建昌·1852∼1898)이 전남 보성
“아! 우리 팔도 동포들이여, 망해 가는 이 나라를 내버려두려 하십니까. 대대로 500년 조선왕조의 유민(遺民)이 아닌
《“경신년(1860) 음력 4월에 이르러 온 세상이 혼란하고 백성들의 마음과 풍속이 나빠져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아! 나도 이런 곳에 유배 좀 보내줬으면….’ 안개가 자욱히 낀 산길을 올라와 산의 품안에 포근히 안겨 있는
정약용은 한적(漢籍)으로 약 500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긴 만큼 그의 학문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사서삼경을 비롯
서울 종로 2가 한복판에서 한발짝 슬쩍 물러서서 좌우의 번화한 종로풍과 사뭇 다른 모습에 눈길을 주다 보면, 친
천진암 오르는 언덕길에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의 십자가뿐이다. 거대한 십자가가 그 일대를 압도한다. 그리고 십
▼논쟁의 현장은 호수밑으로 자연의 흐름보다 더 빠른 변화를 원하는 인간은 혼자만 변해 가는 것으론 부족해서
《“창오산의 구름은 끊어지고 무이산은 텅 비었네(蒼梧雲斷 武夷山空·창오운단 무이산공).” 물 밑의 모래가 환히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자라기에는 인간들의 영욕과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용트림하듯 고뇌하며 400년 세월을 지켜온
《퇴계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유교문화축제’의 개막식이 열린 지난해 10월5일,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
경기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언덕, 왕릉 부럽지 않은 장대한 묘에 들어앉아 멀리 서울을 굽어보고 있는 포은 정몽주
역사상에서 정도전의 ‘불씨잡변(佛氏雜辨)’만큼 철저하게 불교를 비판한 글은 찾기 어렵다. 또한 이 글만큼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