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서 길을 잃다 - 곽효환 우습지 않은가 뒷산에서 길을 잃다니 눈 아래로 낯익은 얼굴들이 빤히 보이
《뻘에 다녀온 며느리가 밥상을 내온다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가시지 않던 더위 막 끓여낸 조갯국 냄새가 시원하
《마을 주막에 나가서 단돈 오천 원 내놓으니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그것 나
《봉천동 산 1번지 봉천시장 오거리 봉천밥집 아주머니는 밥이 하늘 길은 다섯 갈래로 뿔뿔이 흩어져 대추나무 가지
《누구나 마음 한편에 오보를 세우고 산다 기원을 던져도 돌이 되고 욕정을 던져도 돌이 되는 오보의 신비를 누
녹, 봄봄 - 엄재국 서너 살 계집애가 맨땅에 사타구니 사이로 녹물을 찔끔 흘리는 봄 허공이 녹슬면 꽃이 피는가
《술 취해 전봇대에 대고 오줌 내갈기다가 씨팔씨팔 욕이 팔랑이며 입에 달라붙을 때에도 전깃줄은 모르는 척,
《소가 새끼를 낳았다. 찬물 한 그릇 떠서 누렁콩도 소복이 담아 외양간 앞에 놓았 다. 이틀밖에 안 된 송아지
네 눈동자 - 백 창 일 봉숭아 한 꽃송이에게 눈길을 주라 무논을 채우고 있는 청개구리에게 눈길을 주라 저기 아장
《닳고닳아 더는 신을 수 없어 신발장 구석이나 차지하고 있는 한갓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이지만 함부로 버리지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 30년 만에 소집된 얼굴들을 만나니 그 낯짝 속에 근대사의 주름이 옹기종기 박혀 있다
콩나물 시루 - 정 병 근 추, 추, 추, 요강에 오줌을 누며 할머니가 치를 떨었다 잠든 콩나물 시루에 몇 바가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깜박 잘못 들어선 하행길이다 가야 할 상행선은 차들이 잘도 달린다 빠져나갈 출구가
《우리 동네 버스 기사 아저씨는 혼자 노래하다가 신나면 우리한테도 시킨다. 날마다 같은 동네를 다녀서 시집간
참 큰 가방 - 권주열 강동 바닷가 마을에는 참 큰 가방이 하나 있다 지퍼 같은 수평선을 열면 멸치 가자미 꽃게 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