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0, 80년대에 라디오를 참 열심히 들었다. 그 시절 나 같은 애청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주로 라디오의
1970, 80년대 재개봉관의 풍경은 어둡고, 냄새나고, 음습한 것이었다. 그땐, 개봉극장에서 상영이 끝난 영화
“TV 사줄까? 전축 사줄까?” 30년 전 아버지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내게 한 첫 제안은 당시 대부분의 가정이 고
사랑은 DJ 목소리를 타고…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 쪽이나 파고다극장 근처에는 유난히 분식센터가 많았다. 교복
먹을 것도 없었다. 자존심도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나는 남루하고도 비루한 아이였다. 당시의 나는 늘
1975년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었던 영화는 기억하건대 최인호 원작,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이 아니었
1970년대 후반 나는 고향인 전북 전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한마디로 무지하게 평범한 학생이
“야, 좀 잘 접어봐, 이렇게 만들어야 잘 날아가지.” 1981년 어느 날, 서울 용산구 청파동 신광여중 옥상엔 20
앞만 보고 달리며 먹고 살기 바빴던 나의 젊은 시절과는 달리 21세기에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라디오방송도, 우체국도, 호텔도, 세탁소도, 백화점도 다 있는데 내 청춘의 날들에 가장 숨어 있기 좋은 방이었던 음
내 왼쪽 귀에는 손가락 한 마디만한 크기의 흉터가 남아 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4학년까지 원인 모르게 앓던 종
1974년 여름이었다. 서해안에 있는 덕적도로 여행을 갔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때 바다를 처음 봤다. 지금은 영
학창시절의 나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만큼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공부를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
1982년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중고등학생들의 두발 자율화가 시행됐다. 군인들보다 더 짧아, 거의 스
197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세대에게 라디오는 참 소중한 존재였다. FM 방송이 있기 전 음질도 안 좋았고 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