齊(제)나라 대부 陳賈(진가)는 周公이 형 管叔(관숙)의 반란을 예견하지 못한 사실을 거론하여 성인의 성인다움을 부정하고, 그 논리를 바탕으로 제나라 宣王(선왕)이 연나라를 침략하여 병합하려고 했던 과실의 심각성을 은폐하려고 했다. 맹자는 옛날의 君子(군주와 대신)는 改過遷善(개과천선…
爲政者(위정자)는 정책상 잘못을 저질렀을 때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권력을 지키려고 잘못을 변명하는 것이 좋은가? 역대 군주와 대신들은 대개 후자를 택했다. 이에 대해 맹자는 군주가 잘못이 있으면 즉각 이를 시인하고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齊나라 宣王(선왕…
당나라 때 韓愈(한유)는 ‘原道(원도)’에서 유학의 道統(도통)이 堯(요), 舜(순), 禹(우), 湯(탕), 文王(문왕), 武王(무왕), 周公(주공), 孔子, 孟子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공자 이상은 후대인들에게 聖人으로 존숭을 받았고, 맹자 또한 일부 사람들에게는 성인으로 인…
齊(제)나라 대부 陳賈(진가)는 宣王(선왕)이 맹자의 충고를 듣지 않고 연나라를 정벌하고 병합하려다가 2년도 안 돼 연나라 사람들이 배반하자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고, 왕을 위해 변명하려고 했다. 진가는 맹자를 만나,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周公도 그 형제들이 반란할 것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齊나라 宣王(선왕)은 연나라를 정벌한 후 2년도 안 돼 연나라 사람들이 배반하자, 맹자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보다 앞서 맹자가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연나라를 취하지 말라’고 충고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녕,영)人(영인·아첨꾼)인 陳賈(진가)가,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周公…
齊나라 宣王(선왕)은 燕나라를 정벌하고 아예 병합하려고 하자 맹자는 ‘연나라를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연나라를 취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연나라 사람들은 2년 후 태자 平을 왕, 즉 昭王으로 삼고 제나라에 대항했다. 제나라 왕이 맹자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자 제나…
齊나라 宣王(선왕)은 燕나라의 국정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연나라를 공격해서 이겼다. 그리고 그 승리를 하늘이 준 기회라고 여겨 연나라를 아예 병합하려고 생각했다. 이때 맹자는 ‘연나라를 완전히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한다면 연나라를 취하고 연나라를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
‘公孫丑(공손추)·하’의 제9장은 제8장의 일과 연결된다. 제8장에서 맹자는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齊나라가 燕(연)나라를 정벌하는 데 빌미를 제공했으나 뒤에 자신은 제나라에 정벌의 정당성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以燕伐燕(이연벌연·연나라로…
맹자는 변론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송나라 유학자들은 맹자를 水精(水晶·수정)과 같다고 했다. 수정은 광채가 나지만 溫潤含蓄(온윤함축·따스하면서 내면의 깊이를 지님)의 맛이 없다. ‘公孫丑(공손추)·하’의 제8장에서, 맹자는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齊나라가 燕(연)나라…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던 맹자에게 제나라의 신하 沈同(심동)이 燕(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개인적으로 물었다. 연나라는 그 왕 子쾌(자쾌)가 천자의 명령을 받지 않고 왕위를 사실상 남에게 물려주어 나라의 紀綱(기강)이 무너진 상태였다. 맹자는 연나라가 정벌당해 마땅하다고 심동에…
맹자가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齊나라가 燕나라를 정벌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맹자가 제나라의 정벌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이것은 제나라 신하 沈同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물었을 때 可하다고 답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맹자는 자신은 연나라가 …
제나라 신하 沈同이 찾아와 燕나라를 정벌해도 좋은가 사적으로 묻자, 맹자는 燕나라는 정벌당할 만하다고 대답했다. 당시 연나라 왕 子쾌(자쾌)는 재상 子之를 신임해서 왕위를 그에게 넘겼으므로 나라의 紀綱(기강)이 무너지고 백성들은 塗炭(도탄)에 빠졌다. 맹자는 연나라 왕이 천자의 명령을…
맹자가 제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제나라 신하 沈同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물었다. 연나라 왕 子쾌(자쾌)는 재상 子之를 신임해서 나라를 그에게 맡기고 자신은 신하 노릇을 하고 있었다. 맹자는 연나라 왕이 천자의 명령을 받지 않고 사실상 왕위를 남에게 물려주…
‘公孫丑(공손추)·하’ 제8장은 맹자가 齊(제)나라와 燕(연)나라의 전쟁에 개입한 사실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고 해서 후대에 그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당시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정치에 관한 諮問(자문)에 응하고 있었다. 이때 제나라 신하 沈同이 개인적으로…
맹자는 모친의 상에 훌륭한 棺材(관재)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다른 학파의 학자들이 맹자를 비난했다. 장례를 도왔던 제자 充虞(충우)도 맹자가 사용한 棺材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맹자는 망자의 살갗이 흙에 닿는다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정한 두께의 관곽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