由는 子路의 이름이다. 공자는 자로에게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논어’ ‘衛靈公(위령공)’에 실려 있는 공자의 이 말에서는 비탄의 감정이 배어나온다.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던 중에 陳(진)과 蔡(채) 사이에서 곤경에 처했다. 그때 子路는 “군자도 이토록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
공자는 학문지식이나 도덕행위가 하나의 원리에 의해 체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아 一以貫之를 중시했다. 줄여서 一貫이라 한다.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서 공자는 학문지식과 관련해서 一貫을 강조했다. 한편 ‘里仁(이인)’에서는 도덕행위가 忠恕(충서)의 이념에 따라 一貫되어야 …
인간 의지와 현실 상황은 어긋나는 일이 많다. 그렇기에 크고 올바른 뜻을 지닌 군자일수록 본시 곤궁하다. 이것을 君子固窮(군자고궁)이라 한다.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서 나왔다. ‘사기’에 따르면, 공자는 노나라 哀公(애공) 6년인 기원전 489년에 衛(위)나라를 떠…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첫 章이다. ‘위령공’ 편은 修身(수신)과 處世(처세)에 관한 내용이 많다. 공자는 기원전 495년 위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 위나라 영공과 대면한 듯하다. 당시 영공은 無道한 데다가 晉(진)나라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영공은 진나라에 원한을 갚을 생각에…
‘논어’ ‘憲問(헌문)’의 마지막 章에서 공자는 아이의 품성을 관찰하는 방법과 아이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교육 방법에 관해 중요한 지침을 제시했다. 공자는 闕(궐) 마을의 童子(동자)에게 손님 안내의 역할을 맡겼다. 동자는 冠禮(관례)를 치르기 이전의 소년이다. 어떤 사람이 “저 …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에서 공자는 친구를 사랑하기에 친구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原壤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오랜 친구였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나무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세상의 부조리를 혐오해서 禮法(예법)을 무시하고 거짓으로 미친 척하는 佯狂(…
흑 ○의 경솔한 단수가 엉뚱한 패를 불렀다. 흑 ○로는 참고 1도 흑 1을 먼저 뒀으면 깔끔했다. 흑 3 때 백이 실전처럼 패를 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 백이 패에 질 때 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백이 그걸 감수하고 패를 하면 어떨까. 그 경우엔 이 패와 비슷한 크기의 팻감을 찾기…
유학의 윤리사상을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이 敬이다. 송나라 유학자들은 主一無適(주일무적)을 敬이라고 정의했다. 자기 자신을 오로지하여 다른 데로 분산시키지 않는 상태를 敬이라고 본 것이다. 단, 정약용은 敬이란 하늘을 공경하고 어버이를 공경하는 일과 같이 구체적 대상을 공경하는 일을 뜻…
上은 爲政者(위정자)다. 好禮는 예를 좋아해서 예법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한다. 禮란 상하의 구별, 내외의 분별 등 올바른 질서를 가리킨다. 則은 조건(가정)과 결과를 이어주는 접속사다. 부릴 使는 統治(통치)한다는 말이다. ‘논어’는 보편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지만 역사적인 환경 속에…
과거에 천자는 선왕이 죽으면 삼 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服喪(복상)의 규정도 매우 상세했다. ‘書經(서경)’에 보면 “殷(은)나라 高宗(고종)은 居喪(거상)하여 諒陰(양암)에 삼 년 동안 있으면서 정치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諒陰은 諒闇(양암)으로도 적으며,…
세상을 과감하게 잊고 은둔하는 것을 果忘(과망)이라고 한다.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에서 나왔으니, 790호에 이어진다. 공자의 경쇠 연주를 들은 荷(괴,궤)者(하궤자·삼태기 멘 사람)는 그 音色에서 ‘마음에 품은 것이 있음’을 간파했다. 한참 듣고 있다가 그는 “소리가 잗달…
‘논어’ ‘憲問(헌문)’의 이 章은 참으로 名文이다. 삼태기를 멘 隱者(은자)가 등장하여 공자를 비판하고 이에 대해 공자가 대응하는 방식이 연극처럼 생생하다. 우선 앞부분만 본다. 荷(괴,궤)者(하궤자·삼태기 멘 은자)의 비판을 통해 거꾸로 공자의 위대한 인격과 사업을 이해할 수 있기…
‘논어’에는 공자나 제자가 隱者(은자)를 만난 이야기가 있다. ‘憲問(헌문)’의 이 章에는 새벽에 성문 여는 일을 맡아 보던 은자가 등장한다. 성명을 알 수 없어 晨門(신문)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논어’의 편찬자들은 은자의 일이나 물건을 근거로 보통명사를 만들고 고유명사로 대용했다.…
‘논어’ ‘憲問(헌문)’의 賢者(벽,피)世章(현자피세장) 가운데 일부다. 공자는 時中(시중)을 중시해서 올바른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공직에서 물러나라고 가르쳤다. 여기서는 어진 이가 벼슬을 그만두는 상황을 넷으로 나눠 정리했다. 첫째,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는 세속을 아예 떠나라. …
魯(노)나라 定公(정공) 12년에 大司寇(대사구)로 있던 공자는 孟孫氏(맹손씨) 叔孫氏(숙손씨) 季孫氏(계손씨)의 세 도읍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군사를 해산시키려고 했다. 제자 子路(자로)는 季孫氏의 宰(재)로 있으면서 공자를 도왔다. 맹손씨가 저항했으므로 공자는 군사를 동원해 에워쌌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