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夏(하) 殷(은) 周(주)의 三代(삼대)에 지방 학교는 각각 이름이 다르고 학습 내용도 달랐다고 했다. 즉 하나라의 校(교)에서는 백성 가르치는 것을 위주로 했고, 은나라의 序(서)에서는 활쏘기 익히는 것을 위주로 했으며, 주나라의 庠(상)에서는 노인 봉양하는 것을 위주로 했다…
등나라 문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맹자는 공평한 토지제도와 조세제도를 실시하여 백성들의 생업을 안정시키고 학교 제도를 정비해 인간다운 가치를 추구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지방의 학교는 夏 殷 周의 三代에 각각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하여, 하나라에서는 校, 은나라에서는 序, 주…
맹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먼저 공평한 토지제도와 조세제도를 실시하여 백성들의 생업을 안정시키고 그런 후에 윤리를 가르쳐 인간다운 가치를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등나라 문공이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주나라에서도 助法(조법), 곧 井田法을 실시했다는 사실을 강조한 후…
맹자는 토지제도로 井田法을 실시하여 稅收(세수)의 근간으로 삼고, 정무를 담당하는 계층에게는 世祿(세록)을 급여해야 한다고 보았다. 곧, ‘耕者(경자)를 九一(구일)하며 仕者(사자)를 世祿(세록)하니라’라고 했다. 九一이 바로 정전법이다. 은나라 때는 그것을 助法(조법)이라고 했다. …
맹자는 정무를 담당하는 계층과 농토를 경작하는 계층을 구분하여 그 두 계층이 상보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이상적인 정치제도라고 보았다. 그래서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백성들에게서 수확의 9분의 1을 세금으로 취하여, 벼슬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祿俸(녹봉)을 주어야 한다고…
맹자는 국가의 收稅(수세)와 관련해서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등나라 文公의 자문에 응했을 때 夏(하) 殷(은) 周(주)의 세법을 비교하여 하나라의 貢法(공법)을 최악이라고 비판했다. 하나라 때의 공법은 50이랑의 私田에서 수년간 수확한 양을 조사해서 …
맹자는 등나라 文公의 자문에 응해 정치에 대해 논하면서, 夏(하) 殷(은) 周(주)의 세법을 예로 들어 공평한 收稅(수세)의 문제를 거론했다. 하나라 때는 貢法(공법), 은나라 때는 助法(조법), 주나라 때는 하나라와 은나라의 조세법을 지역에 따라 달리 채용하여 徹法(철법)을 시행했다…
맹자는 등나라 文公에게 夏(하) 殷(은) 周(주)의 세법을 거론하여, 농민들에게서 세금을 공정하게 취하는 문제를 논했다. 夏后氏(하후씨), 즉 하나라 때는 국가에서 家長(가장)마다 토지 50이랑을 주고 각 가장이 5이랑분의 소출을 관청에 바쳤다. 이것을 貢法(공법)이라 한다. 은나라 …
맹자는 등나라 文公에게,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공정하게 취해야 한다고 촉구하기 위해 三代의 세법을 예로 들었다. 夏后氏, 즉 하나라 때는 국가에서 각 家長에게 토지 50이랑을 주고 각 가장은 5이랑분의 수확을 관청에 바쳤다. 이것을 貢法(공법)이라 한다. 본문의 ‘五十’ 다음에는 이랑 …
맹자는 등나라 文公에게 정치의 근본은 백성들의 生業(생업)을 안정시키는 데 있으므로 백성들에게서 세금을 과도하게 걷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고서 魯(노)나라 陽虎의 말을 인용해 貪慾(탐욕)과 仁政(인정)은 兩立(양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陽虎는 곧 陽貨(양화)로, 춘추시대 …
등나라 文公이 정치에 대해 묻자 맹자는 農政(농정)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백성들의 生業(생업)을 안정시키는 것이 정치의 가장 근본임을 역설했다. 이때 ‘양혜왕·상’에서 제나라 宣王(선왕)에게 仁政을 권하면서 진술한 말을 반복해서, 백성들은 恒産(항산)이 없으면 恒心(항심)이 없게 된다…
지난 호에 말했듯이, ‘등문공·상’ 제3장의 이 말은 ‘양혜왕·상’에서 맹자가 제나라 宣王(선왕)에게 仁政을 시행할 것을 권하면서 진술한 말이기도 하다. 及陷於罪然後의 於가 여기서 乎로 바뀐 것만 다르다. 한문 문장에서는 於와 乎가 서로 통용되는 일이 많다. 맹자는 인간 삶의 생활기…
‘등문공·상’ 제3장의 이 말과 이 말의 뒤에 이어지는 말은 모두 이미 ‘양혜왕·상’에서 맹자가 제나라 宣王(선왕)에게 仁政에 대해 논하면서 진술한 말이다. 맹자의 조언에 따라 선왕 定公의 상례를 마친 등(등)나라 세자는 즉위한 후 禮를 갖추어 맹자를 초빙했다. 그 왕이 곧 文公이다…
‘등文公(등문공)·상’ 제3장이다. 등(등)나라 세자는 鄒(추) 땅에 있던 맹자에게 자문해 선왕 定公의 상례를 무사히 마친 후 즉위했다. 그가 文公이다. 등나라 문공이 禮를 갖추어 초빙했으므로 맹자는 등나라에 이르렀다. 문공이 정치 강령에 대해 묻자, 맹자는 農政(농정)에 대해 설파하…
‘등文公(등문공)·상’ 제2장의 마지막이다. 등(등)나라 세자는 선왕 定公의 상례를 고례에 따라 삼년상으로 하고자 했으나 부형과 백관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래서 사부 然友(연우)를 통해 鄒(추) 땅에 있는 맹자에게 두 번이나 자문했다. 맹자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세자 자신이 率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