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나를 등용해 주는 자가 있다면, 일년만이라 해도 어느 정도 기틀을 잡을 수 있으리니, 삼년이면 성취가 있을
공자는 仁義의 왕도정치를 강조했으므로 현실의 물질 기반이나 백성의 생활 조건을 강조하지 않았다고 추측할지
奢侈(사치)란 말은 남보다 많이 가진 것을 뜻했다. 奢의 옛글자는 大의 아래에 많을 多(다)를 썼고, 侈는 오른쪽이 多
몸가짐이 바르면 시키지 않더라도 행해지고,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시키더라도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 ‘논어’ ‘
선인들은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는 사람에게 격려의 시문을 쓸 때면 ‘논어’ ‘子路(자로)’편의 이 章을 인용하
‘논어’ ‘子路(자로)’편에서 樊遲(번지)가 농사짓고 채소 가꾸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자 공자는 거절했다.
번지가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공자는 “나는 노련한 농부보다 못하다”라고 했다. 다시 번지가 채
‘논어’ ‘子路(자로)’편에서 공자는 子路에게 名과 言, 言과 事(사), 事와 禮樂(예악), 禮樂과 刑罰(형벌)의 관
‘논어’ ‘子路(자로)’편에서 공자가 제자 子路에게 正名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공자는 名과 言, 言과 事,
‘논어’ ‘子路(자로)’편에서 공자는 제자 자로의 질문에 답해, 만일 衛(위)나라 군주가 청하여 國政(국정)을
공자가 正名의 중요성을 밝힌 장으로 ‘논어’ ‘子路(자로)’편에 들어 있다. 子路는 공자에게 자신이 섬기는
지난 회(714)에 이어진다. 제자 仲弓이 魯(노)나라 대부 季氏(계씨)의 집정관이 되어 정치의 방도를 여쭙자 공자는 하급
‘논어’ ‘子路(자로)’편에서 제자 仲弓(중궁)이 魯(노)나라 대부 季氏(계씨)의 집정관이 되어 정치의 방도를 여쭙자
‘논어’ ‘子路(자로)’편의 첫 章(장)으로, 子路問政章이라 한다. 제자 子路가 정치의 要諦(요체)에 대해 묻자, 공
논어 ‘顔淵(안연)’편의 마지막에 놓인 이 章은, 曾子의 말을 통해서 평소 孔門(공문)에서 交友(교우)의 도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