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운다. 이른 아침부터 그 울음소리가 숲 속을 바쁘게 날아다닌다. 멧비둘기와 뻐꾸기가 빗속에서 잘도 운다. 이따
모 심은 뒤의 무논! 그 가득 채워진 물 속에 어린 모들이 아직 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불안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
아까시 꽃이 비탈에 언덕에 흐드러졌다. 막 시작된 녹음의 여기저기 아까시 꽃밭으로 백발이 성성하다. 이 아까시
어디에 관용의 풍경이 있다는 말인가. 관용은 허울이다. 관용은 허깨비이다. 특히 관용은 정치의 울 밖에서
서구적 선진화는 파괴, 중도가 인간적이지 않은가 새벽꿈에 문이 나왔다. 작은 한쪽 사립 자리에 새로 커다란 두
생명은 주어인가.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생명은 술어일 것이다. 생명은 주체이기보다 행위이다. 행위의 능력이
고비 사막에서 물이 동났다. 목이 탔다. 어린 목동으로부터 물 한 그릇을 얻어 마셨다. 생명의 물이었다. 제주 서두부
어떤 기쁨도 공짜배기는 없다. 기쁨에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걸림 없는 기쁨은 끝내 걸림 있는 것이 되
양쯔 강 기슭의 노자 가라사대, 꽃에 머물지 말라(그렇다면 한 번 펄쩍 뛰어 열매에 머물라고?). 싫어. 나는 방
한 마리의 들개가 석양머리 언덕에 혼자 서 있구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아침 참새소리 이 가지 저 가지에서
태양에도 약점이 있을 것이다. 보름달에도 약점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이 약점투성이 행성(行星)인 지구 도처의 인간
지금 한반도의 서해안은 어디가 지옥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이제부터 모든 꿈은 지옥의 꿈에 닿아 있음을 깨닫는
《구호와 외침은 무성하지만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 감성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 세상을 돌아볼 수 있는 사색이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