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고 작은 세상에/물을 뿌린다//투명한 물방울들이 눈부시게 굴러내린다//콩나물들의 입술이 젖는다/금빛머리가 우주를 밀어 올리며/한 치씩 솟는다/하루분의 양식을 나누어 먹고/서로의 키를 낮추며 가지런히 크는/저 순결의 공동체//평등의 모습이/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 <강만 ‘콩…
‘대형 콘크리트 수조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아, 흐린 물 아래/납작 붙은 도다리란 놈들이 겨우 분간된다./…피멍 같다. 노숙의 저 굽은 등 안쪽의 상처는/상처의 눈은 그러니까 지독한 사시 아니겠느냐/들여다볼수록 침침하다. 내게도/억눌린 데가 그늘져/젖어 썩은 활엽처럼 천천히/떨어져나…
‘봄동아,/볼이 미어터지도록 너를 먹는다/어쩌면 네 몸 이리 향기로우냐!/오랜만에 팔소매 걷고 밥상 당겨 앉아/밥 한 공기 금세 뚝딱 해치운다만/네가 봄이 눈 똥이 아니었다면/봄길 지나는 그냥 흔한 풀이었다면/와작와작 내게 먹히는 변은 없었을 게 아니냐/…봄의 몸을 받지 못한 나는 구…
‘숭어는 물나라 높이뛰기 선수/물 밖으로 높이 뛰어 오른다//사람들은 참 대단해/어떻게 공기 속에서 숨을 쉬지//철퍼덕, 물 속으로 들어간 숭어가/꼬르르륵, 공중에서 참았던 숨을 쉰다’ <함민복의 ‘숭어’에서>푸하하하! 숭어는 점프왕이다. 웬만한 그물은 단숨에 뛰어넘는다. …
‘끝내 입을 열지 않는 홍합이 있어/칼을 들이댄다.//끓여도 끓여도 열리지 않는 문/죽어서도 몸을 열지 못하는/그 안에 무슨 비밀 잠겼을까?/남의 속은 풀어주면서/제 속 풀지 못하는 홍합의 눈물/그토록 깊어 단단했구나.//들이댄 칼로 내 속을 찔리고 마는/죽어서도 못 열 비밀 하나쯤/…
‘생선가게 얼음상자 속에 널브러진 아귀 한 마리/쓸 데 없이 입만 커서 온몸이 주둥이인/그래, 사람들은 너를 아귀라 부른다/주둥이뿐이라 하지만/작은 지느러미 하나 버릴 것 없어/술안주에 그만인 아귀찜과…/쓸데없이 ×만 큰/온 몸이 성기인 나를,/아귀는 나를 아귀, 아귀(餓鬼)라 부른다…
‘곰탱이 멍탱이 말말들 마소/그래도 곰탱이 금탱이 되어/인기가 하늘을 찌른답니다…못생긴 그 모습 눈이 놀라고/시원한 그 맛에 혀가 기가 막혀…한때는 두리뭉 물곰 잡히면/재수가 없다고 텀벙 던져서/물텀벙 그렇게 불리었지만…뼈 없이 그렇게 살만 있어서/그 시간 지나면 맛이 변하고/얼음에 …
‘따뜻한 김이 나는 두부를/부서질까 조심스레 들고 와서/기름에 부쳐 먹고 된장찌개에도 넣고/으깨어 아기 입에도 넣어주었지//두부를 좋아하는 사람들 맘씨처럼/정에 약해 곧잘 부서져 내리기도 하고/뜨거운 된장 속에서 가슴 부푸는/그런, 두부를 나도 모르게 잊고 살다니!’<나희덕의 ‘…
‘명태 하하하/피가 되고 살이 되고/노래 되고 시가 되고/약이 되고 안주 되고/내가 되고 니가 되고/그댄 너무 아름다워요/그댄 너무 부드러워요/그댄 너무 맛있어요//감사합니데이//내장 창난젓 알은 명란젓 아가리로 만든 아가리젓 눈알은 구워서 술안주하고 괴기는 국을 끓여 먹고 어느 하나…
‘시험으로 먹어본다는 것이 한 그릇 두 그릇 먹기 시작을 하면 누구나 재미를 들여서 집에 갈 노잣돈이나 자기 마누라의 치마감 사줄 돈이라도 아니 사먹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값이 눅은 것도 눅은 것이거니와 맛으로든지 영양으로든지 상당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자래(自來)로 서울의 폐병…
‘내 나이 80에 송이 하나 갖고 이 지랄은 처음이여. 내가 이래 봬도 50년 전부터 저 산에서 송이를 땄어. 누가 감히 날더러 송이를 따라 마라 해. 제깐 놈이 산을 샀으면 샀지. 난 판 적 없어. 내가 우리 땅 우리 산에 송이 한 뿌리 따지 못한다면 인간도 아니지. 아 썩을 놈의,…
‘낙지를 먹을 땐 머리부터 천천히 꼭꼭 씹어야 한다/무심코 다리부터 입에 넣을 짝 시면/뻘밭에서부터 솟구쳐 나오는 힘/바다로 미끄러지는 꿈/땡볕으로 자라나는 뼈마디의 저항이/정수리에 달라붙어/한꺼번에 당신을 뻘밭으로 끌어당길 것이다/토막을 내어도 끊임없이 달려드는 그 고집/진흙 속에서…
‘그대에게 줄 것이 없어/감자탕을 먹으며/뼈를 발라 살점하나 건넨다/그대는 손을 젓는다//내 살이라도 뜯어주고 싶은데/고작 돼지 등뼈에 붙은/살점이나 떼어주는 나를/그대는 막는다//나는 그대의 슬픔을 모른다/그대 안에 깃들지 못하고/저녁 구름처럼 떠나간 그대의 사랑을 모른다’ <…
‘김치찌개 하나 둘러앉아/저녁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모습 속에는/하루의 피곤과 침침한 불빛을 넘어서는/어떤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이 들어있다//실한 비계 한 점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주며/야근 준비는 다 되었니 어머니가 묻고/아버지가 고춧잎을 닮은 딸아이에게/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지 그…
‘한 접시 바다의 뼈를 발라/식탁 위에 눕혀 놓고는/소주 한 잔에 떠올리는/비린 추억의 가을/세월처럼 덩달아 가버린 날이/가지런히 누워 물결 포개면/…천리의 근심도 만리의 우울도/한 접시 바다를 길어/한 잔 술로 풀어 마시며/풍편에도 소식이 없는 너의/안부를 버무려 식초를 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