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는 봄에 제주도 성산포 근해로 몰려와서 남해안으로 북상한다. 남해를 거쳐 그중 한 떼는 동해로, 한 떼는 서해로 올라간다. 그리고 9월에서 1월 사이에 다시 남쪽으로 내려간다. 약 40년을 주기로 서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성해지면 동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쇠해지고, 동해로 올라가는…
“일곱 여덟 장의 상추 위에 밥 한 숟가락 푹 퍼 담고, 보리새우젓 반 숟갈 넣고, 또 밥 반 숟갈 정도 퍼 얹고, 된장 조금 넣고 켜켜로 싸면 간이 고루 잘 맞아서 좋다. 이걸 양손에 들고 밥태기 뚝뚝 떨어뜨리면서 두 눈 부릅뜨고 우적우적 씹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마른 나무 목단, 작약이 핍니다/부지깽이에 할머니 눈 속에 홍매화 복사꽃 피었다 집니다/어느 마른 몸들이 밀어내는 힘이 저리도 뜨거울까요/만개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니다/안개꽃 자욱한 세상, 밥이 꽃을 피웁…
‘흔히 삼계탕이라 하지만, 계삼탕이 맞는 말이다.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은 부재료인 까닭이다. 이렇게 음식이름을 바로잡아 놓고 보면 이 음식 맛의 중심이 보인다. 주재료인 닭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다. … 인삼은 달고 씁쓰레한 맛을 낸다. 향이 강한 재료이므로 닭과 섞으면 인삼이 이긴다…
‘노오란 호박꽃 옆에 노오란 오이꽃 귀엽다/호박꽃은 거지반 애호박을 맺지 못하지만/오이꽃은 깜냥대로 애오이를 낳는다/노오란 호박꽃 한 송이 한 송이/황소들의 목에 종으로 달아주면 좋겠다/노오란 오이꽃 한 송이 한 송이/소녀들의 머리핀 꽃으로 꽂아주면 좋겠다’ <박만진의 ‘오이꽃 …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긴…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틈 없이/땀 흘려 흙이 젖고 숨 막히고 맥 빠진 듯/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정자나무 그늘 밑에 앉을 자리 정한 뒤에/점심 그릇 열어놓고 보리단술 먼저 먹세/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채운 뒤에/맑은 바람 배부르니 낮잠이 맛있구나/농부야 …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
《‘다음 경기가 늘 가장 어렵다. 오, 아니다./가장 어려운 것은 경기가 없을 때다. 경기가 없다./그래도 경기는 90분 동안 계속된다./공이 없다. 그래도 공은 둥글다./그라운드가 없다. 그래도 진실은 그곳에 있다./그래, 그런 것 같다./종료 휘슬이 불면 경기는 끝난 것이다.’&l…
《‘한번을 울어서/여러 산 너머/가루가루 울어서/여러 산 너머/돌아오지 말아라/돌아오지 말아라/어디 거기 앉아서/둥근 괄호 열고/둥근 괄호 닫고/항아리 되어 있어라/종소리들아’ <서정춘의 ‘종소리’ 전문>》 한여름 민어 떼는 왜 울까. “우웅∼우웅∼” 왜 바다 밑에서 소 울…
《‘몸과 맴이 심들 때는/막걸리 한 사발 이기 보약 아이가/아, 요즈음 젊은 것들이야 먹을 끼 널려 가꼬/막걸리 요놈을 아주 상머슴 부리듯 하지만/내가 대가리 소똥 벗겨지고 난 뒤부턴/막걸리 요놈 한번 배부르게 묵고 싶어/두 눈깔이 막걸리 빛깔처럼 허옇게 뒤집혔다 안카나/막걸리 요놈은…
‘보리쌀 씻는 물에/구름을 담아 쓱쓱 씻어낸다//희디희게 일어서는/뭉게구름,/보리쌀 뜨물이 은하수를 만든다//질박하게 놓이는/댓돌 딛고 앉아/재진 보리밥 찬물에 말아/한 숟갈 입에 넣으니//청보리,/엄동을 뚫고 살아오는 듯/오소소 퍼지는 겨울 냄새//댄 여름,/무딘 뱃속에 시원한/궁전…
‘바르비종 마을의 만종 같은/저녁 종소리가/천도복숭아 빛깔로/포구를 물들일 때/하루치의 이삭을 주신/모르는 분을 위해/무릎 꿇어 개펄에 입 맞추는/간절함이여/거룩하여라/호미 든 아낙네의 옆모습’ <이가림의 ‘바지락 줍는 사람들’에서> 바지락은 줍는가? 캐는가? 줍는 것이라면…
‘어젯밤 좋은 비로 산채가 살쪘으니 광주리 옆에 끼고 산중을 들어가니 주먹 같은 고사리요 향기로운 곰취로다 빛 좋은 고비나물 맛 좋은 어아리다 도라지 굵은 것과 삽주순 연한 것을 낱낱이 캐어내어 국 끓이고 나물 무쳐 곰취 한 쌈 입에 넣고 국 한번 마시나니 입안의 맑은 향기 삼키기 아…
‘겨울날 따스한 볕을 임 계신데 비추고자/봄미나리 살찐 맛을 임에게 드리고자/임이야 무엇이 없을까마는 내 못 잊어 하노라’ <청구영언 작자미상 시조에서> 미나리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줄기 속이 꽉 찼다. 날것을 한 입 깨물면, 아삭아삭 미나리 허리 부러지는 소리. 사각사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