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당시 종정인 성철 스님이 저서 ‘선문정로(禪門正路)’에서 깨달음과 관련해 돈오점수(頓悟漸修·깨친 후에도 계속 닦아야 한다)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돈오돈수(頓悟頓修·깨달은 뒤에는 더 이상 닦을 필요가 없다)를 주장하자 불교계가 벌컥 뒤집혔다. 깨달음과 닦음(수행)은 선불교의 핵…
1993년 11월 10일 경남 합천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에는 만장(輓章)과 인파의 물결이 이어졌다. 마침내 인파가 멈춘 곳은 해인사에서 3km 떨어진 다비장이었다. 성철 스님 열반 7일째. 여기 모인 이들은 물론이고 이 땅의 많은 사람이 함께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스님…
“처음에 들어갈 때는 우봉 스님이 살림 맡고, 보문 스님하고 자운 스님하고, 내(나)하고 이렇게 넷이 들어갔습니다. 청담 스님은 해인사에서 가야총림 한다고 처음 시작할 때는 못 들어오고, 서로 약속은 했었지만 그 뒤로 향곡, 월산, 종수 스님, 젊은 사람으로는 도우, 보경, 법전, 성…
1971년 11월 15일 청담 스님이 입적하자 동아일보를 비롯한 주요 신문들은 그 내용을 일제히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6일자 1면에 “이청담 스님 입적 향년 70세 뇌일혈로”라는 제목의 1면 기사와 사회면 기사로 불교계 안팎의 분위기를 상세하게 전했다. 신문들의 보도는 대개 15일 …
“스님, 공양상이 허술해서 우짭니까.” “그래도 오늘은 간장 한 가지가 더 올라왔구먼. 중 밥상 삼찬이면 족한 기다.” 종단 총무원장이던 청담 스님과 속가 딸로 동국대 불교학과에 다니던 묘엄 스님의 대화다. 청담 스님의 밥상에 오른 것은 밥과 시래깃국, 김치, 간장 종지가 전부였다. …
“성불(成佛)을 한 생 늦추더라도 중생을 건지겠다. 다시 생을 받아도 이 길을 다시 걷겠다. 육신은 죽어도 법신(法身)은 살아있다.” 비구승과 대처승의 대립 속에 불교 정화 운동을 이끌면서 대한불교 조계종의 기틀을 잡은 청담(靑潭) 스님(1902∼1971)의 말이다. 청담은 법호이며 …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또는 말하고 잠잠하고 움직이고 조용히 하는 것들이 모두 마음이며,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도 마음이며, 노래 부르고 춤추며 웃는 것도 다 마음인 것이다. 이 마음이 범부(凡夫)도 되고 성인도 되는가 하면, 삼계에 윤회하여 천만 가지로 과보를 받게 되나…
“DJ(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쪽에서는 나가라고 합니다.”(고건 명지대 총장) “당신은 여당 체질인데 안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송월주 총무원장) 1995년 민선 1기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고건 명지대 총장이 찾아왔다. 큰일을 앞두고 원로들의 조언을 많이 구하던 그는 김수환 …
‘천지개벽이야/눈이 번쩍 뜨인다/불덩이가 솟는구나/가슴이 용솟음친다/여보게/저것 좀 보아/후끈하지 않은가.’ 동해가 탁 트여 있는 강원 양양 낙산사의 의상대 가는 길목에는 아담한 시비가 있다. 시조시인 조종현(1906∼1989)의 ‘의상대 해돋이’. 종현(宗玄)은 법명이고 본명은 용제…
“우리 정부는 국가의 정통성을 계승하며 짧은 시간에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의 신장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럼에도 교과서에는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왜곡과 자학사관으로 가득합니다.”(송월주 스님) “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신문과 TV만 보는 우리 방식으로는 젊은 세대를 제대…
너무 괘씸했다. 그래서 종무원 몇 사람을 불러 그를 잡아오라고 했다. 그가 자주 왕래하는 잡지사 주변에서 여러 번 기다리기도 했다. 허사였다. 이쪽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좀체 잡을 수가 없었다. ‘일초(一超)가 정말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초는 일초 스님, 나중 시인으로…
“건국과 산업화 시기를 거쳐 이제는 권력이 독점되는 대통령 중심제보다는 민주화와 지역감정 극복을 위해 내각책임제가 필요합니다. 개헌해야 합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한 당시 김종필(JP) 자민련 총재는 자리에 앉자마자 특유의 소신을 피력했다. 미묘한 시점이었…
2008년 8월경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모임이 청와대에서 열렸다. 기념사진을 찍은 뒤 박재완 청와대국정기획수석의 요청으로 별실에 갔더니 이명박 대통령(MB)이 있었다. MB는 대뜸 촛불시위를 화제에 올렸다. “광우병 촛불시위와 관련된 사람들이 조계사로 갔는데 내보낼 방법은 없습…
2003년 9월 19일 노무현 대통령이 종교계 원로를 초청한 오찬 모임이 있었다. 나와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가 참석했다. 사형제도폐지운동에 적극적인 가톨릭의 요청으로 면담이 성사됐다. 나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공동대표 자격으로 방북했다 오찬 때문에 일정을 하루 단축하고 청…
“외환위기는 여야가 함께 수습해야 합니다. 정부·여당의 책임이 크지만 야당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를 공격하거나 정부만 비판해서는 환란(換亂)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송월주 총무원장)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 후보)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