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 日총독에 폭탄“조선청년 깨어나라”백발 노인의 가르침백발의 노인은 자신의 죽음마저 조선 청년들의 가슴에 민족혼을 심는 교육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서대문형무소를 찾아간 아들 중건에게 남긴 유언에서다. 강우규(姜宇奎·1855∼1920·사진)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오후 5시 …
《“어여뿜과 매력을 늘 보존하실 여러분! 깁뿐 소식이 있읍니다. 가정에서 손쉽게 삼사분 치료로 살결이 근본적으로 곱고 히게 되는신가정 미백료법이 발명되엇습니다. 족분단장을 않고라도 늘 어여뿐 자태를 보존하실 수 잇으며 더위에 거칠기 쉬운 살결을 보호하고얼굴에 생긴 잡티와 여드름 잔주름…
《“폭탄현행범인은 조선인 윤봉길(25)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범인의 근본은 아직 판명되지 안엇스나 ○○○○(상해정부)의 일파라고도 한다. (…) 군사령부 발표에 의하면 백천(白川) 군사령관은 좌안(左顔), 대퇴부 등 전신 수개처에 파편을 바덧는대 모다 2주간 내지 5, 6주간에 전쾌…
《‘조선호텔 지배인으로 온 사퇴시예 씨는 말하되 조선호텔로 말하면 여러 외국사람들을 만히 접대하기 때문에 그 디위가 국제적인즉(…) 의복범절에 대하야는 일본사람들은 나막신을 신고 함부로 올나오는 일이 있스나 조선사람 중에는 모다 신사의 태도를 직히어서감사한 일이라고 말하더라.’ ―동아…
《‘금 이십일 오전 중에 시내 약초성 사는 소송원오랑이라는 사람의 명의로 딴스홀 허가원을 경긔도 보안과에 제출하얏다. (…) 조선의 수부(首府)인 경성에서 이와 가튼 사교긔관이 업슴으로 말미암아 외국에서 경성을 찾는 손님들도 무엇에 정을 부치지 못하고 오락가락 하다가 경성을 떠나게 됨…
《‘따님을 유혹하는 마수가 피서지에서 이리저리 활약합니다. 보호자 없으면 하로(하루)길이라도 보내지 마시오.―지금의 더위는 실로 심합니다. 학교 휴가를 기다렸다가 산으로 바다로 뛰여가는 여학생들이 만슴니다. 마음껏 뛰고 놀고 교실에서 고달피든 사지를 펴고 심신의 휴양을 +게 하는 것은…
《“임군 일흔(임금 잃은) 창경원에는 아직도 비색(悲色)이 가득하여 것칠 날이 묘연한데 애통 중에 계시면서도 (…) 일반 민중에 위안을 주시고저 시민의 산책처로 유일무이한 창경원을 개원하도록 하념을 나리시리라는 말슴이 숭문되는데 왕 뎐하의 어자심이 그토록 넓으심으로 칠월경부터는 개원하…
《“내무성보건조사위원회에서는 십팔일에 화류병 예방에 관한 특별위원회를 열고 동병 예방 법안을 전회일치로 가결하엿는데(…) 내무대신의 명령으로써 화류병 진료소를 공공 단체에 설치하고 화류병 환자로 하여금 적당한 치료를 하게하며 동시에 그러한 환자로써 매음을 할 때에는 삼개월 이내의 중역…
《“작년도 통계에 의하면 조선에서 결행된 이혼건수가 팔천이백이십여라 한다. 재작년의 육천구백구십일 건에 비하면 증가한 수가 일년에 천이백여 건이다… 소위 유산지식계급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이혼하고 무산하류계급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이혼한다….”―동아일보 1929년 10월 25일자 사설 중…
《“조선청년들은 지금 연애 전성시대에 다다랏다. 혁명 전의 로서아에서 청년들이 ‘동지여! 백성 가운데로’하고 부르지드시 우리네는‘청년아! 이성의 품막으로’하고 외오치게 되엿다. 그래서 학생이고 신사고 머슴아히고 마님이고 녀학생이고 행낭어멈이고 할 것 업시그가 눈코 바르(바로) 백인(박…
《재판장=피고(이병립 연희전문학교 학생)는 륙월 십일 국장일 관수교 우에서 국장 행렬이 지나갈 때 격문을 뿌리며 ‘○○○○(조선독립)만세’를 불럿는가.피고=그럿소.재판장=그것은 무삼 목덕으로 불럿는가.피고=그것은 세살난 아해라도 다 알 일이니 무를 필요도 업는 줄 아오.(중략)재판장=…
《“모처에서 탐문한 바에 의하면 전긔(前記) 안모는 녯날 하루빈에서 일본 정객 이등박문을 총살한 안중근 씨의 친척이요 또 로국(露國)에서 평양에 드러온 이래 중화군과 기타 각디를 수차 왕래하며 동지를 규합하야 무삼 일을 계획하는 듯함으로 이미 중화경찰서에서도 그 련루자로 청년 이삼인을…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서울 탑골공원에서 발표한 기미독립선언서. 그 선언 이후 1년 3개월이 흐른 1920년 7월 12일, 서울 정동 특별법정에서는 이와 관련된 대대적인…
《‘현대인물투표는 이전에 도모지 업든 일이 될 뿐 아니라… 십일 정오까지 본사에 도착한 뎨 일회의 투표결과는 아래에 긔록한 바와 가치 실로 현재 조선인 중에 각 방면을 모도 망라하야 진실로 흥미가 매우 찐하며…’ ―동아일보 1923년 5월 11일자》 1919년 3·1운동으로 불붙은 …
《이십일일 오후 일곱시 평양의 라디오 수신긔마다 과격한 배일(排日)연설이 감전되엇다. 연설자는 류창한 일어로써 여자임이분명하얏는데 과격한 배일연설은 칠분간이나 게속되어 만주문제와 국제련맹에까지 언급하얏다…이를 방지함에는 부득이 전력을 고도로 하야이 전파를 구축할 수박게 업서 당국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