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옥탑방은 21세기 청춘의 불안한 미래와 고달픈 꿈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하지만 이젠 옥탑방조차 사치스러운 공간이 된 것일까. 옥탑방 옆에 방치된 비좁은 물탱크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연극이 등장했다. 올해 초 발표된 태기수 원작의 동명소설을 무대화한 ‘물탱크 정류장’(태…
대조적 삶을 살아온 두 할배가 만났다. 30년 넘게 국어교사로 재직하다 은퇴한 순철(이영석)과 참치잡이 외양어선 선장이던 봉팔(오영수)이다. 일흔넷 동갑으로 똑같이 상처한 두 사람은 어느 요양병원 병실 환우로 조우한다. 두 사람은 살아온 이력만큼 성격도 판이하다. ‘아 다르고 어 …
한 편의 연극을 통해 호러와 스릴러, 코믹 드라마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 중인 ‘오레스테스 3부작’(이윤택 각색) 관람의 묘미다. 이 작품은 올해 설립 20년을 맞은 우리극연구소가 배출한 김소희 김미숙 이승헌 세 배우의 연출 데뷔작이다. 세 배우가…
숨 막히는 명연기? 없었다. 스펙터클한 무대미학? 없었다. 충격적인 장면? 없었다. 그런데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전체 80분 공연시간 중 60분가량은 시냇물처럼 웃음이 졸졸 흐르다가 막판 20분 끊임없이 반복되는 장면을 통해 관객을 우물처럼 깊은 침묵으로 몰아넣었다. 7일과 8…
냉전시대 동독 출신 동성애자의 기막힌 삶을 자전적으로 풀어낸 작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헤드윅’(1998년 초연)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헤드윅은 동베를린 출신의 동성애자로 미군과 결혼하기 위해 트랜스젠더 수술까지 받는다. 하지만 실패한 뒤 미국에서 록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다가 사랑…
창극의 변신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22∼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국립창극단의 ‘메디아’는 ‘창극이 이토록 스펙터클할 수 있다니’ 하는 감탄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우리 전통 설화를 현대적 스릴러로 각색한 ‘장화홍련’(정복근 작·한태숙 연출)과 이청준의 동명 소설을 …
처음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건조한 의식의 세계와 몽환적 무의식의 세계가 하나로 연결됐다는 발상 때문이다. 의식의 세계는 주인공인 열일곱 살 같은 열다섯 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이호협)와 예순이 넘었지만 여섯 …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연극·뮤지컬 전용 극장의 무대는 천장 높이가 12m나 된다. 이 무대 한복판에 한국에서 공수된 흰색 무명천이 꼬여 있었다. 이불 안감이나 기저귀로 쓰이는 소창은 한국 전통 굿에서 무당이 망자를 저승으로 안내할 때 쓰는 ‘길베’로도 활용된다. 그 대형 소창을 꼬아 …
“내 다른 모든 영화는 흑백영화여도 상관없지만 단 하나 이 작품만은 컬러영화여야 한다.” 20세기 예술영화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스웨덴 출신의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1918∼2007)이 이렇게 말한 영화가 ‘외침과 속삭임’(1972년)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이 컬…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7년간 강호를 떠돌았지만 칼집 속 칼을 단 한 차례도 빼보지 못한 무사…. 연극의 구상을 접하고 1980년대 말 유행했던 ‘외팔이 무사’ 유머 시리즈가 떠올랐다. 외팔이 신세로 깊은 산속에서 10년간 두문불출하고 온갖 무공을 익힌 주인공이 아비의 원수를 갚으러…
‘우의정 정철이 그 피의 국면을 주도했다. 그는 농사짓는 농부처럼 근면히 살육했다. 살육 틈틈이 그는 도가풍의 은일과 고독을 수다스럽게 고백하는 글을 짓기를 좋아했다. 그의 글은 허무했고 요염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정철은 조선 가사문학의 최고봉으…
반 고흐의 인상파 그림만을 보고 반 고흐를 판단해선 안 되고 피카소의 큐비즘 그림만 보고 피카소를 판단해선 안 된다. 두 화가가 젊은 날에 그린 그림들을 보면 거의 사진을 방불케 할 정도의 정밀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런 그림은 사진이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왔기에 그들은 완전히 새로…
서울 대학로에 때아닌 김광석 바람이 거세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를 풍미한 포크 록의 가객(歌客) 김광석(1964∼1996)의 노래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두 편이 잇따라 공연 중이다. 아트센터K 네모극장에서 3월 15일부터 공연 중인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대학로뮤지컬…
“인제 세상이 달라졌어. 인제는 자유야.” 1967년 당시 19세의 옥스퍼드대 학생 산드라(전혜진)와 케네스(이선균)는 이렇게 외치며 비틀스의 ‘올 유 니드 이즈 러브(All You Need Is Love)’에 맞춰 춤을 춘다.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명문대를 다니던 케네스는 형의 …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예술작품으로 둔갑시켰다면 로메오 카스텔루치(53)는 ‘똥’을 누고 치우는 과정을 공연과 종교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23, 24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올려진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에 대하여’를 통해서다. 제7회 페스티벌 봄 개막작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