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담당 기자로서 중요 작품을 빠짐없이 보고자 노력했지만 의욕을 따르기엔 족탈불급이다. 뒤늦게 소문을 듣고 작품을 보려 했지만 이미 끝난 경우도 있고, 같은 작품도 출연 배우에 따라 굴곡이 심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개인적 관극(觀劇) 경험만으로 올 한 해 어떤 작품이 최고이고 어떤…
디즈니는 ‘인어공주’(1989년) 이래 애니메이션 뮤지컬의 성공신화를 쌓아왔다. 어린이들이 좋아할 동화를 바탕으로 하되 성인관객까지 사로잡을 유머와 패러디를 가미하고 아름다운 선율까지 갖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세계 시장을 겨냥해 이야기 무대의 확장을 거듭 시도한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
작가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돈키호테는 광인(狂人)이다. 현실과 가상을 분간하지 못하는 미친 사람이다. 철 지난 중세 기사도 이야기에 빠져 지내는 르네상스 시대 인물이다. 비현실적인 몽상가, 물불 안 가리는 행동가를 지칭하는 대표명사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세르반테스와 같은 날(1616…
극예술의 심층적 감동은 어디서 오는가. 생물학 용어를 빌리면 계통발생과 개체발생이 겹치는 지점에서 발원한다. 계통발생은 인류 전체의 보편적 발전 과정을 말한다. 개체발생은 개별 인간의 성장 과정을 말한다. 이 둘이 교차하는 지점이란 인류의 집단무의식(또는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원초적…
1라운드 땡. 아 이건 뭐 이종격투기가 따로 없네요. 사각의 링을 연상시키는 무대세트와 권투글러브를 낀 배우들 때문만은 아니죠. 온갖 이질적 요소가 무대에서 충돌에 충돌을 거듭하기 때문이죠. 먼저 ‘얄개들’이란 남성 4인조 인디밴드의 콘서트와 열일곱 명의 남자배우로만 구성된 드라마가 …
2000년대 한국 문화사의 키워드 중 하나가 1930년대의 재발견이다. 일제강점의 암흑기로만 기억되던 그 시대를 근대적 욕망이 꿈틀거리는 역동적 시대로 재조명하는 문예작품들이 쏟아졌다. 1920∼40년대 한국 근대 연극사의 뒷모습을 좇은 ‘경성스타’(김윤미 작·이윤택 재구성 및 연출)…
연극이 시작되고 30분은 지루했다. 아빠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중산층에서 하루아침에 단칸방으로 쫓겨난 일가의 이야기에서는 현실을 진하게 우려낸 사골국물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공주님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중학생 막내딸(박소연)의 외계인 타령이나, 햄버거 가게 점원 노릇을 못해 먹겠다…
“TV드라마가 다 그렇지 뭐. 도대체 드라마에서 뭘 기대하는데.” 가끔 아침드라마를 보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불평을 늘어놓을 때마다 돌아오는 아내의 지청구다. 그렇다. 이제 TV드라마를 보면서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철지난 레코드판을 틀어대는 것과 같다. TV드라마는 이제 더는…
러시아 연극의 저력은 무서웠다. 이번엔 모스크바도 아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아니었다. 러시아 우랄산맥 남쪽 마그니토고르스크란 소도시 극장(푸시킨 드라마 시어터)의 공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 풍성한 무대와 밀도 넘치는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한없이 출렁이게 만들었다. 가난한…
건축이 동결된 음악이라는 괴테의 말을 뒤집으면 음악은 녹아 흐르는 건축이 된다. 연극 ‘33개의 변주곡’(모이시스 카우프만 작·김동현 연출)은 그 ‘녹아 흐르는 건축’을 무대언어로 재구축하려는 야심 찬 기획이다. 이야기는 두 개의 트랙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근육세포가 굳어지는 루게릭병…
스물다섯 우울한 두 청춘이 외딴 산골 정신병원에서 만난다. ‘제 엄마 다리 밑에서 나와 책방에서 자라고, 정신병원에서 청춘을 보낸 놈’인 이수명과 ‘재벌집 천덕꾸러기 사생아로 버림받고 방화범’이 된 류승민이다. 둘이 만나는 그 순간 수명은 승민이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에 진짜…
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정의신 작, 손진책 연출)의 포스터에서 주인공 춘길(서상원)은 꾹 다문 입술 사이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 담배 연기의 회색빛이야말로 이 연극을 관통하는 빛깔이다. 흑백의 이분법으로 포착할 수 없는 불분명한 빛깔, 그러면서도 한없이 서글픈 빛깔. 연…
24, 2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는 소극장 무대에 어울리는 1인극이다. 그럼에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1200석 무대에 올랐다. 2010 서울연극올림픽의 개막작으로 공연된 이 작품은 참가작 48편 중 유일하게 1000석 이상 대극장에서 공연됐다. …
그리스신화가 구약성서라면 그리스비극은 신약성서다. 전자가 불가해한 신 중심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약점 많은 인간 중심의 이야기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는 그 변곡점에 위치한 작품이다. 본디 이 극은 인간이 만물의 척도임을 주장한 소피스트들을 겨냥한 작품이었다.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된다는 말이 있다. 600년 전통의 일본 전통연극 교겐(狂言)의 260여 편 중 엄선한 3편을 선보인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의 ‘트래디셔널 교겐’의 무대가 그러했다.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의 첫 무대로 3, 4일 서울 중구 장충단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