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들어오세요!” 13일 오전 8시. 연면적 약 1만 m²의 파도풀을 ‘전세’낸 이종호 오션월드 안전요원(29)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 걸린 사람 좋은 웃음에 믿음이 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등 뒤에 둘러맨 공기통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눈은 풀려 ‘무아지경’의 상태. 후끈거리는 열기로 코에선 콧물이 흐르는데 입은 바싹 말라 목이 탄다. 손목이 욱신거려 잠깐 팔...
“‘욕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더라고요. 욕도 이렇게 화려하게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매번 깜짝깜짝 놀라요. 어떻게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욕들을 만들어 내는지….” 4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층의 한 사무...
“1분 만에 한 학기가 결정 나 버렸어….” 8일 오전 수강신청을 마친 한 여학생의 지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나머지 두 과목은 일단 아무 거나 넣어 두자.” “역시 수강신청은 운이야.” 이런저런 하소연이 이어진다. “나, 이번에 올킬 했어(원하는 과목을 다 신청했다는 뜻)…
마치 누군가가 내 몸을 빨래 짜듯 비트는 기분. 하체는 왼쪽, 상체는 오른쪽으로 돌아가는데 순간 척추가 휘는 줄 알았다. 고통스러우면 탭(상대방, 자신의 몸, 바닥 등을 두드리는 행위. 종합격투기에서 항복을 의미)을 치라던 조언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컥컥’거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계산하기 전에 진동 벨을 눌러 대기번호를 설정해주셔야 돼요. 이 버튼 보이시죠?” 한국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영어로 다시 한 번 설명해 줘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어느새 그녀의 손가락이 정확히 한글로 ‘대기번호’라고 적힌 버튼을 눌렀다. 설마 점…
‘좌측 세종 E-3-1.’ 세종대왕의 턱수염 일부와 오른쪽 어깨 부분 용포를 그린 부분이다. 그림이 인쇄된 가로 120cm, 세로 100cm 크기의 항공기 외부 전용필름(모델명 VS7704)을 조심스럽게 항공기 동체의 지정된 지점에 붙였다. 창문이 있는 부분이라 필름을 창문틀 모양에 …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야.” “….” 작은 야구 글러브를 자전거 손잡이에 끼우고 막 페달을 밟으려는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아이는 어색한 침묵만을 남겨둔 채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다 막 교문 앞을 나서려던 아이에…
《 “하나, 둘, 셋∼큐!” 드라마 연출자의 사인이 내려지자 세트장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발소리,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때 등장한 남녀 주연 배우. 어깨를 맞대고 앉아 눈빛을 교환한다. 거사를 앞둔 낭군님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에는 애틋함이 묻어난다. 이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
‘버리고 갈 것인가, 가지고 갈 것인가.’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도로에 무릎 높이까지 차오른 빗물이 차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운전석 밑 시트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순간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지난달 26일부터 31일까지 계속된 집중호우는 …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애써 웃음지어 보여도….” 노래 가사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애써 웃음지어’ 보려 해도 쉽지 않았다. ‘자우림’의 ‘팬이야’는 기자의 노래방 ‘18번곡’인데, 적막한 연습실에서 익숙지 않은 반주에 맞춰 부르려니 시작부터 목이 잠겼다. 고음 부분부터는 원궤…
‘내려다보지 말아야지, 내려다보지 말아야지….’ 수백 번 다짐했지만 결국은 호기심이 승리했다. 철조망으로 제작된 작업자 통로(캣워크)를 따라 걷던 나는 해발 200m 지점에서 그만 내려다보고 말았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아 손이 부서져라 안전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뻥 뚫린 바닥 아래로 …
“벗으세요. 제가 갈아입혀 드릴게요.”옷을 받아든 내게 그녀가 말했다. 순간 당황해서 그녀의 눈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가 마음을 바꿨다.“그럼 저는 나가 있을 테니까 갈아입고 나오세요.”25인승 버스 안. 엷게 틴팅(선팅)된 유리창으로 가로등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밖에서 …
“무조건 큰소리로 외치면 돼요.”“사랑해요, 씨스타!”벌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려 작게 소리를 내 봤다. 열혈 ‘삼촌팬’ 이호성 씨(33)가 건네준 ‘마 보이(Ma Boy)―응원법’에는 파란색 사인펜으로 중간 중간 밑줄이 굵게 쳐져 있었다. 걸그룹 ‘씨스타19’가 무대에서 신곡 ‘…
머릿속에선 달변이 쏟아진다. 하지만 입에선 같은 말만 맴돈다. 눈이 닿은 곳은 카메라의 차가운 렌즈. ‘온 에어’를 알리는 빨간불이 깜빡인다. 카메라와 시선이 마주치니 부담은 배가 됐다. 코가 막히고,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3분쯤 지나니 입이 바싹 마르고 목이 탄다. 1시간 넘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