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물 중 하나인 근정전(勤政殿)을 다시 보고 싶어 경복궁을 찾았다. 최근 관광객이 늘면서 예전의 호젓함이 사라졌기에, 서둘러 이른 아침 궁에 들어섰다. 때마침 겨울비가 추적거리며 내렸다. 너른 마당에 들어서니 빗속에서 거대한 궁궐의 적막감만 요연했다. 궁궐 뒤로 보…
전라북도 서반부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호남평야는 일찍부터 한반도의 중요한 곡창지대였다. 하지만 그 풍요로움은 구한말 이후 수탈의 역사를 불러왔다. 강화도조약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강제 개항된 군산항은 쌀 수탈의 거점이었다. 항구를 통해 일본으로 실려간 물자 가운데 9…
불가에서는 스님이 입적을 하면 화장을 한다. 화장 뒤 나온 사리는 탑을 세워 안치하는데, 이를 승탑(僧塔)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부도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잘못된 용어다. 부도란 원래 부처를 지칭하는 말로, 일제강점기 때 주인 없는 승려의 묘를 뜻하는 말로 쓰이다 굳어졌다고 한다…
경남 남해군 남해도(南海島)의 끝자락, 금산(錦山)의 정상에 올랐다.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아름다운 산이다. 고려시대에는 보광산(普光山)이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 건국 전 보광산에 들어와 백일기도를 올렸고, 뜻대로 새 왕조를 이루게 됐다. 그는 훗날 산에 은혜를 갚기…
끝없이 이어지는 감나무 밭 사이의 좁은 길을 벗어나니 떡하니 소나무가 나타났다. 커다란 바위 위에 터를 지켜온 지 600여 년, 나무의 기개가 지리산 자락의 풍경을 압도하고 있었다. 기둥같이 두꺼운 줄기, 오랜 연륜을 보여주는 갈라진 껍질, 사방으로 뻗어나간 나뭇가지는 마치 바위를 뚫…
제주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제주시 산록남로를 달렸다. 높이의 변화만 있을 뿐 쭉 뻗은 도로는 오르락내리락하며 여행자에게 시소를 태워주는 것 같았다. 한라산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도로는 한적했다. 길가에 가득 피어난 억새들이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전날부터 비가 내려 내심 걱…
시선(詩仙)이라 불리며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이백(李白). 우리에겐 본명보다 성에 자(字)를 붙인 이태백(李太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술을 사랑했던 낭만시인이었다. 그래서인지 1000여 편의 시 중 술과 관련된 작품이 무척 많다. 그의 기구한 삶은 방랑의 연속이었다…
상하이의 위위안(豫園·예원)은 중국 강남 지방을 대표하는 유명한 정원이다. 전형적인 중국식 원림(園林·정원을 일컬음) 중 하나로 꼽힌다. 위위안이란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정원’이라는 뜻이다. 이 중 ‘위’는 유열노친(愉悅老親·부모를 즐겁게 함)이란 말에서 왔는데, 즐거울 유(愉)…
묘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다. 회색 콘크리트를 드러낸 채 특별한 마감도 하지 않았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았다. 오히려 유기적으로 연결된 미로 같은 통로들이 끊임없이 생각을 강요했다. 이곳이 매일 수천 마리의 가축이 생사를 달리했던 도축장이었다니! 죽음이 사라진 이 거대하고 그로테스크한…
중국 상하이(上海) 푸둥(浦東) 국제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순환도로는 줄곧 고가였다. 나를 추월해 멀어지는 최고 시속 400km의 자기부상열차가 달리는 철길의 양옆으로 주택단지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허름하거나 누추한 집은 찾기 어려웠다. 오래전 중국 남부에서 봤던 도심 외곽의 낙후한 …
종로구 혜화동 근처에서 일을 끝내고 거리로 나서니 길가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가을을 고스란히 담은 그 아름다움에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성균관 정문까지 발길이 닿아 있었다. 담벼락 너머에도 거대한 은행나무가 보였다. 가을볕 아래 노란 은행나무는 황금도시 엘도라도처럼 성균…
올봄에 매화를 찾아 스케치여행을 다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다. 유난히 무더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지나갔고, 지금은 겨울이 가을을 무시하고 먼저 와버린 듯 쌀쌀함만 가득하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산하는 이 땅에 주어진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창 너머로 보이…
서울 종로구 서촌(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컬음)에서 상량식(上樑式)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광화문이나 숭례문 같은 국가적인 건물의 상량식은 접해 본 적이 있지만, 여염집의 상량식은 처음이라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상량식이란 한옥의 마룻대(상량)를 제자리에 위치…
아내가 봉사활동으로 창경궁 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러 간다기에 따라 나섰다. 아침의 궁궐은 텅 비어 고요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나누어준 호미와 마대자루를 들고 지정해준 잔디밭으로 흩어졌다. 멀리서 보는 것과 달리 잔디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잡초가 있었다. 금방 자루가 가득 찼다. 가을이 …
서울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동대문 주변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요즘도 밤이면 패션상가들의 화려한 불빛이 빛나고, 수많은 내외국인이 쇼핑을 즐긴다. 더불어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초현대적 디자인의 새 건축물이 들어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