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뀐다. 달력을 바꾼다. 어느새 이렇게 홀쭉해졌나. 파르르 떨리는 한 장 남은 달력을 떼고 나니 네모반듯한 흰 자리가 드러난다. 하얀 공백이 일년 만에 얼굴을 내민다. 까맣게 일년을 채웠던 숫자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세월의 검댕을 홀로 피해간 하얀 공백을 보니 하루가, 한달…
웃자란 생각들을 자른다, 머리를 자른다. 지난 한 달 나는 또 어떻게 살았나. 작은 미용실 의자에 앉아 골몰히 상상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 머리를 매만지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이곳은 은하 미용실. 좁다란 홀 바닥이 푹 꺼지고, 거대한 블랙홀이 드러나는 곳. 잘린 머리카락이 우주의 …
《햇살이 쏟아지는 나른한 오후. 고양이가 방 안 구석에서 배를 깔고 누워 꾸벅꾸벅 존다. 주인이 들어와도 잠시 눈을 뜰 뿐 이내 감는다. 새침한 고양이, 무심한 고양이. 어느 시간을 거슬러와 너는 내 앞에 나타난 것일까. 너는 고양이지만 고양이가 아니다. 호랑이다. 작고 앙증맞은 빨…